준서할미 세대들이 자라 온 세월 속에서는 우리는 7살만 되어도 엄니가 농사일로 바쁘시니, 제 동생들을 업혀 주면
보는 사람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라도 동생을 업고서도 보고, 어린 동생들이 걸음마를 뗄 정도만 되어도,
그 시절 올바른 기저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 무명 옷 낡아서 못 입는 것을 생긴대로 잘라서 기저귀를 했기에
그 정도로 자랐으면 어디 밖으로 나갈 때만 기저귀를 했지 기저귀도 채우지 않고, 있으니 방에서 놀다가 오줌을 싸도
지금 생각하면 걸레 같지도 못한 걸레로 닦아 내는 일도 우리 어린아이들 일이였고,
아기가 대소변을 가리는 때부터는 쉬하고 싶다, 응가 하고 싶다 하면 마당의 퇴비무데기로 데려가서 안고서.
볼일을 보게 하고 그 시절은 거의가 다 농사용 소가 있어야 했기에 봄에 다년생 풀의 새싹이 조금만 올라 와도,
호미로 풀을 캐어서 내려가는 봇도랑에 소쿠리채로 일렁 일렁 거려서 씻어서 집에 가져다 두고는, 쇠죽 끓이는데 섞어 주기에
시간만 되면 다시 나가서 쇠죽 솥에 넣을 풀을 캐어 왔었다.
언 손 호호 불면서 꽃샘 바람 추운데도, 어른들이 풀 캐러 가라고, 한 소쿠리 더 캐오너라 하시는 것도 아닌데도
우리 집 소 쇠죽에 먹일 것이라는 것이 그냥 생각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시 나가기도 했었다.
여름이 되어 가면서 풀이 자라면, 학교 갔다 와서는 소를 몰고 들로, 산입으로 풀을 뜯기러 데리고 나갔고,
그 시절 우리 아이들은 특이나 여자 아이들은 일 철에는 소 풀 뜯기고 와서 늦은 저녁을- 엄니께서도 들일에서 돌아 오셔서
저녁을 짓기에,
우리 또래 아이들은 누구나 동생도 거두고, 소풀도 뜯어 오고, 소를 몰고 들판으로
소 풀 뜯기러도 다니는 등의 일을 했고,늘 어두워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했었어도 다 우리들이 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하늘 같은 남자 동생이라서 아기가 누워 있어도 아기 발채로 돌아 다녀야 했는,
할머니들이 좀 차분하지 않아서 그릇을 깨기도 하고, 성가신 남자 동생을 한 대 쥐어 박기라도 하면,
식식잖은 가시나가 하시면서 혼을 내시는 것은 다반사로 살아 온 세대가 준서할미 세대들이였다.
일에 치여서 사시는 엄니여서 그렇게 다정하게 우리들을 보듬은 것은 아니였고,
지금에 생각해보면 들로 소풀 캐러 다니고, 소풀 뜯기러 다니고, 먼 학교길 걸어 다니고 그러면서,
우리들이 소를 돌 보고, 동생을 돌보고 하면서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고, 또 자연 속에서 넉넉한 품성으로 자랐었지 싶다.
그래도 우리들은 감히 엄마에게 요사이 엉덩이에 뿔난 딸들이 엄마에게 대드는 것 같지 않았고,
점점 자라면서, 또 제 손으로 돈이라도 벌면 엄마에게 참으로 잘 대했다.
호강을 받아서도 아니고, 그냥 우리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본을 보고 자라와서 그 좋은 본도 대물림이 되었던 것이지 싶다.
요즘 딸들은 일부이기는 해도,
결혼해서 제 자식을 거두어 주고 즈그는 직장 나가고 살림까지 해 주는 친정엄마에게,
못 마땅한 것만 지적하는 그런 경우가 허다 하다.
방앗간에 어제 저녁 무렵 고추를 갈러 갔었다.
우리 것을 먼저 갈았고, 친구네 것은 다 갈아 놓으니 35근이나 되었는데, 우선 한꺼번에 다 갈지 않고, 두번에 나누어서 가는데,
드르륵 가는 기계에 넣어서 내려서는,
제대로 가는 기계에 반정도 넣어서 마지막 갈면서 플라스틱의 이물질이 들어 간것을 알게 되어서,
고추가루를 체로 치고 손으로 골라 내고 하는데,
가지고 온 고추 포대기를 기계어 부어서 갈다보면 1년에 서너 차례는 사고가 생긴다 했다.고추 다듬다가 가위도 들어 가고,
고추 다듬다 커피 마시고 티스픈도 들어가고, 드링크 병도 들어 가고,아이들 장난감도 들어 가고, 그냥 기계가 멈추어지고,
어찌 어찌 빼내어 지는 경우도 있지만, 기계 기술자를 불러야 해서 고칠 때까지 기계도 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몸이 약간의 장애가 있는 엄마 집에 시집간 딸이 같이 살고 있는 집이였는데,
고추를 다듬을 때는 딸과 함께 다듬었다는데, 작은 장난감 차가 들어 간 것을 몰랐던 경우였는데,
그 딸이 엄마에게 아이 잘 못 보았다고, 어찌나 퍼 부어 대는지 친정엄마에게 얹혀서 사는 듯 해 보였는데,
하도 퍼부어서 방앗간 주인 자매가 그 딸을 나무랬다 했다.
엔간해야 말을 하지 않지로.
이 경우 말고도 성년이 다 된 딸이, 결혼해서 직장 생활한다고 즈그 아이 보아 달라고 그 이유 때문에
친정 집이 따로 있어도 가서 보아 주고 있으니 당분간이지만, 같이 살고 있는 경우도
대개는 그러 하지 않지만, 즈그 어머니께 고마움 보다 이것, 저것 잘 못하는 것을 아이들 야단치듯 하는 딸들도 보게 된다.
그 경우 엄마는 우리 세대이고, 딸은 우리 세대가 낳아서 기른 우리 세대들의 딸들이다.
다 보고 자란 즈그 아기들이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고 하면서,
즈그들 한테 즈그가 한 행동대로 대 물림을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즈그 행동을 대 물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웃친구 두 딸도, 우리 두 딸도 그러하지 않다.
무엇이 잘 못 되어서 우리 세대는 그렇게 집안 일을 하고 자랐고, 그 중에는 초등학교 나와서 도시로 나가서 돈 벌어서
남동생들 학비도 대어 주었고, 또 고향 집 엄니 아버지께 토지도 사 드렸고, 소도 사드린 장한 딸들도 많았는데,
그런 딸들도 자기 어머니들에게 공손 했고, 잘 해드리려 노력 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 세대가 우리 딸들은 잘 못 키운 것 같다.
그런 우리세대의 딸들 중에서 왜 자기 엄마에게 그렇게 못된 행동을 하는 딸들이 있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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