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신행에 대하여.

이쁜준서 2015. 10. 29. 21:27

 

 

봄의 앞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입니다.

봄의 뒤는 폭염의 여름입니다.

우리는 시작을 봄으로 생각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준서할미 세대는 초겨울에 접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준서할미는 만추 쯤에 우리세대도 모르게 세월이 데려다 놓았지 싶습니다.

친구 딸의 신혼인 봄이 시작 되었는데 이 봄이 길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친구 딸래미 내일 신혼여행 갔다 돌아 오면 형제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 것이라

신부집 입장에서 새 사위인 새 사람이 오는 것이라 예전처럼 종방간과 재종간의 친척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어서

음식의 양은 적게 하지만, 가짓수는 그래도 기본이 되어야 하기에,

준서할미는 친구집에 가서 친구를 도와서 음식을 했습니다.

 

친구는 3남매의 자식이, 준서할미는 자매가 있는데,

이번이 4번째 결혼식인데, 준서할미집 결혼 준비도, 친구집 결혼 준비도 친구와 준서할미 둘이서 다니면서 해 왔습니다.

오늘은 내일 음식을 할 것의 식재료들을 익히기 직전까지를 준비 하는 일을 했습니다.

두 엄마가 두집의 네 아이 결혼식을 치루어 내어 왔습니다.

 

준서할미가 어린아이 시절부터 학교 수업중에는 관혼상제란 것을 배웠지만, 실제로 그 시절부터도 관이란 것은

일반인 사회에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만 15세가 되면 했었다는 것이였을 뿐이지만,

혼,상,제는 참으로 유구하게 대대로 내려 오는 우리가 살아 가면서의 통과 할 수 밖에 없는 의례였습니다.

 

준서할미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도 시골에서는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혼인식을 치루고, 몇일 묵었는지도 모르겠고,

친가로 돌아 왔다, 때때로 처가로 왔다 다시 혼자서 자기 본가로 돌아 가고, 짧게는 달을 채우고, 1년을 채우고

신랑이 와서 신부를 데리고 처음으로 시가를 가면 시댁엣는 친척들이 오고 그 때가 시댁의 잔치였습니다.

새신부가 처음으로 시댁으로 가는 것을 신행이라 불렀습니다.

 

요즘이야 신혼여행지에서 친정으로 돌아 와서 하루를 묵어서 시댁으로 가는데도, 신행이라 합니다.

이바지 음식을 서로 주고 받는 일을 생략했다 쳐도 말만 그러는 것이고, 처음으로 시댁으로 가는데 빈손으로 보내지는 못하고

큰문어를 맞추고, 돼지고기 수육을 맞추고, 떡과 약밥을 맞추고, 반찬거리 생선도 맞추고, 쇠고기도, 과일도 준비해서

약소하게 보낸다 합니다. 음식의 양이 이바지 음식보다는 양도 적고, 가짓 수도 적게 하니 약소하게 한다 하지요.

 

정말로 빈손으로 보내는 집도 있기는 하지만요.

이렇게 보내어도 예전 같으면 전도 조금 할 것이고, 떡을 해 가면서도 신랑, 신부의 나이대로 찰 부꾸미를 따로 구워서 갈 것이고,

반찬도 5~7가지 정도 정성 들여서 만들어 가는데, 그런 것을 생략하는 것이지요.

 

예전 준서할미 어린시절에는 신행 온 신부가 손에 명주수건을 드리우고 앉아 있다 아이가 들어 와도 일어서는 것이였는데,

미안 하기는 해도 고와서 보고도 또 보고 싶어서 들락 거렸고, 그럴 때마다 신행 온 신부는 일어 섰었습니다.

그러나 나중 어른들께서 못 들어 가게 해서 들어 가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이 들어 갈 때 빼곰하게 들여다 보기도 했었지요.

 

요즘이사  새벽에 일어나서 새 신부가 간단하게 안주 놓고, 술상 차려서 문안인사 시키는 집은 거의 없고,

신부가 아침밥 혼자 짓게 두는 집도 거의 없습니다.

허례허식이었지 싶은데도 일생에 한번인데, 한복에 하얀 앞치마 두르고 간단하게 술상 차려서 문안인사 드리는 것도,

첫날 아침에 아침 밥 지어서 식사 준비하는 어렵고, 설레이던 그런 것이 살아 진게 아쉽기도 합니다.

그런 풍습이 없어지면서 점점 더 막 살아 지는 듯 해서요.

향기와 여운이 없어 삭막해 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