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유목민 후예들 가정동영상을 나는 아직도 본다.
한마디로 그 맘을 표현하자면.
유치원아이들이 동화 속그림 같은 색채가 없는
그림만 있는 것에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크레파스나 색연필로 색을 칠해서
각자의 맘에 드는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제 욕심만 채우지 않고.
엔간하면 양보하는.
또 어른이 되어서도.
곁의 사람을 가족이던,
친척이던 욕심내지 않고
돕는 것을,
그런 맘을 선하다고 생각하고.
깡촌집성촌에서 초등고학년 시절 동네 친척할머니들께서
내게 무조건 잘해 주시는 것에서 나는 그 선하다 함에
물들여져 자랐다.
또 외할아버지께서는
정직함을 제일로 생활하셔서
일본동경에서 자식들 5남매를 키우시고,
위로 세자식을 결혼도
시켜 일본에서 사는 동안 일본사람들에게 정직한
사람이라고 신용을 얻어
작은 사업도 하셨던 분이셨다.
깡촌 친척할머니들께서 나를
사랑해 주셨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정직한
심성으로 시키지 않은 일을 하고 자랐다.
나는 어려서도 어머니가 시키시는 일도 싫어서
시키기 전 일을 찾아서 했다.
여름방학 때 부산큰집에
갔었어도,
부산 큰 이모님 댁에서도.
내가 오면 집안이 훤해진다고
좋아들 하셨다.
그렇게 자라서 결혼을 했고.
시어머님은 45세 재취이셨고
시아버님은 돌아가셨고,
남편은 맏이였고
내가 잘해야 이 가정은
깨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살았다.
시어머님께서 젊으시니
직장을 가져도 되는데
내가 아이들 제대로 키운다고
한 번도 일하러 나가지 않았다.
두 딸들은 집안일 전혀 하지 않고 여자는 엄마 밑에서
자랄 때가 가장 행복할 때이다란 생각으로 키웠다.
일은 명절이면 30여 명 정도
맏할아버님,
우리 집이 그다음,
막내할아버님댁으로 돌아가면서 차사를 모셨다.
우리들까지 상에 앉으면
우리 아이들은 과일, 차 내고
설거지하고,
전 채반 모아서 놓고.
그것만 하는데도 나는 어른이 되면 제 담당이 되면 다른 일도 잘할 것이라 생각했고
두 딸들은 그렇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선한 사람들이다,
이란 유목민후예들은
5살 정도만 되어도 아버지 어머니를 도운다고 노력을
하는데 그중에서는 특별하게
힘도 모자라면서 하는
7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다.
아버지는 농장에서 일하시는데 땅은 메마르고.
심어 놓은 묘목들과 얼마 전
씨앗 뿌려 발아한 새싹들에게,
제 힘으로 물 호스 끌고
다니면서 바지는 온통 흙
튀고 신발도 흙 투성이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서 아버지 다른 일하는 동안 다 하고.
또 아버지 도우려고
가까이 왔다.
그 아버지 그 아이를 보면서.
너는 축복이 다라 했다.
내가 전업주부로 아이들만 키워서 그 아이들은 능력 있고.
선하게 어른이 되었다.
여름방학이면 안산에서
남자 조카들이 큰아이 보다
두 살, 네 살 차이가 났는데
동서가 데려다주고 가면,
20여 일 있으면서 공부도 배우고. 만화영화 보러도 가고,
초등학생 때는 왔었다.
준서를 먼 우리 집까지
데려다 키웠던 것도 잘한 일이다.
지금 준서네는,
주말에 셋이서 저녁 한 끼니
먹을 때 식사준비를 셋이서
같이 한다고.
먹고 나면 설거지 준서가 한다고 두 분이서 산책하고
오라고 한다고
설거지를 하면 참 예쁘게 정리 정돈해 놓는다고.
준서는 아기적 엄마와 떨어져 있어서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컸다.
지금도 준서를 아기적 내가
데리고 있었던 것은 잘한 일이 다로 생각한다.
이웃대학교 교정에는 나무들이 많아서 유모차에
태워서 산책을 다녔고,
정자가 있는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있었고.
그 연못으로 들어가는
물소리도 좋았고.
작은 숲에서는 새소리 들렸고
제대로 된 한옥도 있었고.
우리 옥상의 초록이들도 있었고,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만
컸는데도.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선생님 한 분과 그 해 들어오는
어린아이 와 1:1 면담에서
올해 원아들 중에는 준서가
제일 손감각이 좋다 하시더라고.
준서는 종일반이고 종일반은
단일반에서 같이 수업하다가
종일반으로 넘어가고.
단일반은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단일반만 하던 아이가 종일반으로 넘어가면
반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5~7세까지 섞여 있으니
5살 준서네 단일반 아이들은, 중간에 그렇게 되면 적응이 어렵다고 했다.
2학기 준서엄마에게 유치원선생님이 종일반으로
2명이 넘어갔는데,
준서가 화장실도 데리고 다니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아주고.
종일반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전해주시더라고
준서엄마는 시간이 없어서도
준서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고
키웠다.
그런데도 착하게 자랐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네 살까지
준서에게 잘해주었고.
엄마 아빠도 잘해 주니.
아마도 다섯 살 준서도
친구들에게 잘해 주었지 싶다.
아기 때부터 어린아이 적에,
무조건 사랑해주어야 한다.
준서가 우리들과 같이 있었던
것 중에서 아토피를 낫게 해 주었다.
영지버섯물을 끓여서 희석한 물을 큰 대야에 담고서
준서가 들어가 앉아서
놀고 나는 그물로 목도 씻기고.
어깨로 흘러내리게도 한참을 그렇게 놀았다.
그렇게 놀면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 목구멍으로 넘어가
밥주머니에서 주물락주물락
해서 작은창자란 것으로 가서 또 큰창자로 가는데 그때
우리에게 좋은 것이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작은창자와 큰창자
어느 것이 길까?
준서는 이유를 말하면서
작은창자가 길다고 말했다.
그 목욕하는 물통 속에서
여러 가지를 내게 들었다.
준서가 하고 싶은 거 말하지 않아도 할머니는 잘 안다고.
5살 여름에 와서는. 우리 할머니는 천재야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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