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토마토가 익어 가고 있다.
파란 열매가 옥색이 옅어지면서 익어 가는 것이다.
TV 드라마에서 1970년대의 이야기 속에 통치마에 모시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나왔다.
두부공장을 하는 사장의 옷차림이었다.
준서할미가 여름에 부드러운 천으로 샤링 치마를 입고, 모시 윗도리를 입기도 했었고,
여름용 천으로 원피스를 입고 외출을 했었던 것은 90년대 여름까지는 그렇게 입었다.
외출을 할 때는 하이힐은 아니였어도 뒷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여름이면 샌들을 신었었다.
고운 무늬의 파라솔을 쓰고,
그 때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어디에 놓고는 그냥 일어서는 일이 없었기에, 핸드빽은 팔에 걸고.
그 시절은 지금보다 더 젊었기도 했지만, 그런 차림 이었을 때는 행동거지가 조신했었지 싶다.
걸음 걸이도 굽 있는 구두를 신고 반듯 반듯 하게 걸었을 것이다.
생명의 기가 눈에 보인다.
열매가 열리는 채소는 1년생 풀꽃들보다 그 생명의 기세가 강해서
아주 작은 포트에 심겨진 것을 심었는데, 이젠 가슴의 높이를 육박 할 정도로 자랐다.
그러다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편한대로 입은 옷이 여름이라도 면소재의, 아니면 기능성 섬유의 9부나 7부바지를 입고
외출을 했었고, 한 여름 그 시원하던 모시 옷은 장농 설합에 두고, 티샤스를 입었다.
작정하고 그리 한 것은 아니고, 모시 옷 푸새하고 다림질 하는 것이 불편 했을 것이고,
치마 보다 덜 조심스러워서 자연스럽게 바지를 입었을 것이다.
무릎을 아껴야 할 정도라 대부분 운동화를 신고, 아니면 쿳션이 있는 구두를 신는다.
결혼식장에 갈 때에도 바지를 입는다.
아무래도 조심이 덜 된다.
칠십대에서는 외출시 통치마에 모시저고리 입는 것도 참 곱게 보이지 싶다.
늘 모시 옷을 입는 것이 아니여서, 3개 있는 모시 상의를 1년에 옷 하나에 3번정도 푸새를 하면 되는 것을
그것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횟수의 문제는 아니고, 생각이 변해서 일 것이다.
방울토마토 화분들이, 포기가 뿌리가 꽉 차서 물을 위에서 주어서는 물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그릇을 바쳐 놓았다.
앞에 가는 아가씨, 마주 오는 아가씨 다들 다리가 쭉쭉 곧다.
시원스럽고, 보기가 좋다,
하의를 그렇게 입어 놓고, 상의까지 정말 아찔 할 정도로 입고 있으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저 옷을 입고, 많은 시선을 어떻게 하루 종일 받아 낼까?
그 시선이 스트레스는 아닐까? 오지랖성 걱정을 하게 된다.
옷은 사람 몸을 담고 있고, 사람 몸은 맘을 담고 있다.
칠십대의 후반기에 얇은 시원한 천으로 통치마 입고, 모시저고리 입고 나드리 나갈 정도로
허리 꼿꼿하고, 무릎 아프단 소리 하지 않는 건강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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