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할미는 자랄 때 매우 엄하게 자랐습니다.
거짖말을 하지 않으면 그 시절 먹거리던 살림살이던, 옷가지던 다 부족했던 시절에도
큰 사기쟁반을 깨고도 거짖말 하지 않고 깨었다고 엄마가 알기 전 말을 스스로 했다고 조심해라는 말 한마디로 넘어 갔는가 하면,
그 시절 초등학생들에게는 지금처럼 객관식만 있는 것이 아니고, 주관식 시험문제도 섞여 있었고,
2학년 꼬마 준서할미는 그 점수의 시험지를 엄마에게 보이면 집에서 쫓겨 날 것 같아서
숨겼고, 엄마가 아시게 되었고,
거짖말 했다고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지요.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체벌금지 운운은 말도 않되는 소리였습니다.
잘 못하면 부모님께서도 매를 들 수 있었고, 학교 선생님께서도 학생들에게 당연하게 매를 들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11월의 장미
준서할미도 아이들이 둘,
준서에미와 준서이모는 네살터울이었습니다.
준서에미는 어려서는 엉덩이 한번 맞지 않고 잘 자랐는데,
6학년 때인데, 그 때가 첫번째 온 사춘기였는지,
아이가 좀 변했지요.
이름만 들어 알고 있던 한 반 아이가
그날 학교를 마치고 시골 할머니댁으로 가는데 따라가 1박을 하고 오겠다 했지요.
않되는 이유를 말하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기여이 고집을 부렸고,
매를 맞았고, 맞지 않던 매를 맞고보니 반항심이 일었고,
그날 학교를 못 가게 했지요.
그 때 시동생이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그 광경 다 보고는 가방 챙기라 하고 엄마한데 잘못햇다 하라하고는
6학년 준서에미 앞 세우고 휭하니 대문을 나갔었지요.
훗날 훗날 생각나는 것인데,
아이에게 매를 든 것은 타일러도 끝내 수긍하지 않은 아이와 싸움에서
화가 났고, 그 화로 인해 6학년 아이에게 매를 든 것이지요.
그 때 매를 든것은 어떤 이유를 끌어 와도 준서할미가 잘 못 한것입니다.
지금 같았다면 그냥 일단 학교를 갔다 와서 다시 이야기 하자 했을 것이고,
않된다는 엄마 말을 들은 아이는 학교에서 이런 저런 생각끝에 가지 않겠다 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꼭 가고 싶다고 맘이 진정된 에미를 설득시킬 수도 있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준서에미에게 참으로 미안했던 일입니다.
절대, 절대 사랑의 매라 할지라도 매는 않되는 것입니다.
맞는 순간 그 아이의 맘은 공황상태일 것입니다.
그 공황상태는 알게 모르게 그 아이 맘 깊이 갈아 앉아 있을겁니다.
사랑의 매도 들수 있다 생각했던 준서 할미는
할미가 된 지금에 생각하면
사랑의 매는 없다 생각합니다.
매를 드는 어른은 사랑의 매라 생각해도
매를 맞는 아이들은 사랑의 매가 더 이상 아닌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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