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사람

오랫만에 만난 외사촌들과...

이쁜준서 2009. 6. 1. 13:10

 

하늘하늘 노란나비 날개 접은 모습의 채송화

 

친정 엄니 형제분들이 5남매 이셨다.

친정 엄니께서는 위로 언니, 오빠가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 여동생이 있는 딱 멋들어진 중간이셨다.

그런데 친정엄니께는 멋들어진 중간이 아니셨다 한다.

한분의 언니는 정신대를 보내지 않으려고 일찍 결혼을 하셨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는 일하러 가시고, 8살 차이의 갓난쟁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일하시는 곳으로 젖을 먹이러 가는 등 아침에 외할머니께서 아침 밥을 해 두고 일터로 가시고 나면,

아홉살 난 어린 아이가 아기도 보아야 하고, 여섯살 난 남동생의 밥도 주어야 했고, 오빠 밥도 챙겨야 하는 그런 세월을

살아야 하셨다 한다.

 

그렇게 산 곳이 일본땅이였고, 일본에서 우리 아버지를 신부 될 처녀는 방안에 있고, 신랑감은 왔으나, 먼발치로 방안의 처녀를

슬쩍 보았고,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외할아버지 성씨가 양반이라고, 신랑감 키 크고, 인물 훤칠하다는 것만 보시고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였다. 하셨다.

친정에 살 때는 일본 동경에서 살았는데, 북해도라던가? 하옇튼 지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누워 있으면,

천정에 뱀이 있는 그런 집에서 사셨다 했다.

 

형제 중에서 제일 일은 많이 하셨고, 일을 했기에 꾸지람만 들었지 외할머니께 포근한 사랑을 못 받으셨다 한다.

이번에 만난 엄마가 업고, 안고, 기저귀 채우고, 젖 먹이러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셨던 이모님 말씀에 의하면,

외할머니께서는 다른 어떤 자식보다 나에게 잘 해 주는데도, 말대꾸를 했었기에 내가 겉으로 사랑을 베풀지 못했다 하셨다고

생전 외할머님의 맘의 말씀을 전해 주셨다.

 

친정엄니까지 위로 차례로 세상을 하직하시고,  동생 되셨던 작은외삼촌, 작은 이모님이 살아 계시고, 팔순이 넘으신 외숙모님이

살아 계신다.

 

외사촌 동생의 딸 결혼식이 있어 외가 곳인 울산에서 모였고, 결혼식 후 바닷가 횟집으로 갔을 때는 어른들 까지 모시고

열다섯명이 갔었다.

결혼식이 오후 3시여서 그런 기회가 있었지만, 다른 큰일에서는 그냥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바쁘게 일어서서,

자기들 삶터로 헤어졌기에 그런 훈훈한 기회는 없었었다.

자랄 때는 자주 보고 지냈고, 또 나는 중학교를 외갓집에서 3년 내내 다녔기에 외사촌들과 특별한 정이 있기도 하다.

정말 팔, 칠, 육, 오, 사,삼, 이가 세 테이블에 나누어서 젊은 축들은 소주 서너잔씩 돌아가고, 정말 기분 좋은 시간도 갖게 되었다.

칠순의 이모님께서는 몇년만에 큰소리로 웃으셨다 했다.

친정쪽 조카들이 반듯하게 자리 잡고, 손주뻘인 그 아랫대 아이들도 예쁘게 잘 성장한 모습이 그리 좋았다 하셨다.

 

우리 때는 자식들을 삼남매에서 오남매를 둔 것이 평균이었고, 외할아버지 생신 때 명절 때 외가로 갔었고,

또 방학때도 가 있기도 해서 외사촌, 고종사촌간에 끈끈한 정이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인정이 있을까...?

준서할미가 중학생일 때 세살, 네살, 다섯살이었던 외사촌 남동생이 소주 서너잔을 먹었다고, 준서할미를 끌어 안고는

내가 누나 많이 좋아하는지 알아요? 라고.... 준서할미 나도 너 많이 좋아한다라고....

집으로 오지 않고, 부산의 이모님댁을 들려 왔지만, 아직 우리들 곁에 계시는 이모님도, 외삼촌도, 외숙모님도

참으로 감사했다.

등이 따뜻한 옷 한벌 얻어 입고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