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투표를 하고 왔다. 2017년 5월 9일이다.
사람을 뽑는 일이라 사람이야기를 하게 된다.
전혀 낯선 사람을 두 사람을 만났다. (5월 1일에)
서울이 친정이라는 한 사람은 (투박한 된장뚝배기 같은 경상도 사람 사이에서) 살면서, 여기서는 친구가 없다고 했다.
밥 같이 먹고, 차 한잔하면서 책 읽은 이야기를 같이 할만한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지 못했는데, 같이 온 사람도 어찌어찌 알게
되었지만 좋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배움이 높아서 아는 것으로는 어디에서고 자기 의견을 자신 있게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나이에 많이 알고, 많이 배웠던 것이 옆 사람을 배려 하는 맘이 되는 것이 좋을 뿐이지 상대가 많이 배웠다는 것이 무에 소용이 닿을까? 싶다.
서울이 친정이라는 사람은 심성이 여린 사람 같았다.
내가 60대 초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자기 분야에서 이름난 강사가 강의를 하면, 몇백명이 모이는 그런 강의에도 가 보았다.
한 켠에 차를 셀프로 마시게 두군데 차려 놓으면 각자가 점심을 먹고 와서 차를 마신다고, 같은 시간대에 움직이니 여나믄 사람이 줄을 선다.
줄 섰다가, 내 차례가 되면 내 뒤의 두사람에게 무슨 차를 드실거냐?고 묻고 먼저 드리고, 내가 마실 차를 준비해 나왔다.
전혀 낯선 사람이든 강의 듣는 동안 내 자리 앞 뒤로 앉아서 얼굴이라도 보았던 것과는 상관이 없다.
60대 때 같이 공부하던, 50대가 저도 여사님처럼 그 연세에도 당당하신 것처럼 닮고 싶습니다라 했다.
평소 상대에게 댓가 없이 받는 것은 빚이라 생각하기에 어느 자리에서도 당당할 수가 있었다.
노년인 지금도, 아직도 어디에서도 당당 할 수가 있다.
살아서는 빚도 갚을 수가 있지만, 이 세상 살다 빚을 진 것을 못 갚고 가면 어쩌나? 그래서 참 조심을 한다.
우습게도 그 당당함이 생각 해 보면,
내가 쪼금 아는 것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아직까지는 노동의 강도로도 일을 할 수 있고, 내 손으로 한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가 있고,
고추장이 맛나거나, 막장을 담았는데 맛나거나, 된장이 떨어졌는데, 아쉽다 할 때, 적당한 그릇에 담아서 나눌 수 있어서일 것이다.
언제나 늘 새 그릇을 사서 담아서 준다.
작년에는 한 친구가 아주 많이 속이 상해서 병이 날 정도였다.
그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속 상함에서 그래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도 있네란 것에서 자기 맘을 풀 수도 있다 싶어서,
열무 7단, 얼갈이 3단을 사서 열무김치를 담아서 반 정도를 새통을 사서 한 통 가득 담아서 만나는 약속이 된 날 주었다.
그 친구는 늘 약속을 해도 자기가 차를 가지고 우리 집 근처에 와서 나를 태우고 간다.
큰 아들과 동거하면서 손주 둘을 키워 주고, 살림까지 다 하는 사람이라,토요일만 자유가 있고, 또 일요일은 남편이 집에 있어
남편 밥을 챙기느라 꼼짝마라인 사람이다.
작년에는 이웃친구가 두 아기가 있는데, 셋째 아기가 8월에 출산 달이라 출산달인 딸이 몸이 무거우니 5살, 2살 아기들
더 많이 보살피고, 날은 덥고, 힘들어 했다.
그 때도 열무김치 한 통을 담아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출산 후 식구들 반찬 없을 때 먹으라고 담아 주었다.
상추김치를 담아서 초계 국수를 했을 때는 온 식구가 한끼를 먹을 정도를 국수만 삶아라 하면서 주었다.
이웃 친구는 내가 59살인던 시기에, 밤에 돌아 오는 중에 길에서 만나 밥맛이 없다고 한 다음 날 호박죽을 가스렌지 두곳에 얹어서 끓였다면서 한 솥 채로 주었던 적도 있다.
서울이 친정이란 사람이 컴퓨터를 초보부터 중급반까지 배웠던 모양인데 얼픗이 알아서 못한다 하기도, 그렇다고 걱정 없이
하기도 모자란 듯해서 어제 수업을 마치고, 우리들 수업을 두량하는 분께 이분 좀 도와드리라 했다.
나는 3기째이고, 그 분은 5월 1일 이번기에 오신 분이고.
밤 9시경이었는데, 컴퓨터 잘 하는 사람이야 단숨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종방간에 11동서가 있는데, 내가 5번째이다.
음식을 해서 식당에 가져 가는 잔치도 여러번 치루었고, 그 때는 결혼식장으로 못 오는 손님들이 부조를 가지고 집으로
오는 것이 으례 있는 일이라 결혼식을 마치고, 혼주는 예식장에 남고 종방간 동서들이 집으로 와 손님을 치루었다.
5번째라 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는 내가 나서서 음식 단도리 하면서 그 손님들을 받는 역활도 했었다.
우리 사회가 변하고 변해서 이제는 예식장에서 1인당 얼마로 식대 계산하는 것으로 되었지만.
이 나이에도 나는 낯가림을 한다.
이 나이에 점심 약속을 하고,차 마시고 하는 새로운 사람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싫어 한다.
같이 온 다른 사람은 내가 컴퓨터를 배우러 다니는 복지관에서, 도서실, 식당, 상담전화 받기등등으로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다.
컴퓨터 배우는 날 도서실 당번인 날이니 수업을 마치면 도서실로 무조건 오라고 했다.
웃으면서 땡하면 발딱인 사람이라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이 고향이라는 유순하게 보이는 사람이 고맙다면서 자기가 점심을 사겠노라 했다.
저가 낯선 사람들과 약속하고 같이 식사하고를 하지 못하는 낯가림이 있습니다.
그냥 월요일 만나서 같이 공부하고 같이 전철 타고 오고 그러자고 했다.
어제는 이렇게 놓여졌던 화분들을 제자리에 놓으려 하는데, 왼쪽 화분은 패스하고, 2개 화분을 도저히 그대로 지나갈 수가 없었다.
중간의 분홍빈도리, 오른쪽의 공조팝을 옥상 바닥에 갑바를 깔아 놓고, 분갈이에 들어 갔다.
분홍빈도리는 칼도 들어 가지 않아서 칼을 대고 망치질까지 했고,
은행잎조팝
은행잎 조팝도 이렇게 꽃덩어리가 되었으니 뿌리가 화분 속에 꽉 차서 그냥 두면 새 뿌리가 날 공간이 없을 것이라,
또 외면할 수 없었고, 명자나무 화분중에서도 5개인가?도 또 눈에 뜨이고,
꽃 키우는데 사용하는 것들 잡동사니를 담아 두는 벽 쪽에 있는 것도 다 앞으로 꺼내고 쓸고 다시 놓고, 하는 과정에
아주 무거운 것도 들었고,정말로 노동의 강도가 있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중간에 내려 와서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했지만, 6시간여 일을 했다.
그러면서 옥상일이 끝나고 내려오니 세탁기도 돌리고, 삶는 빨래도 하고, 그러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캔에 베어서
피가 퐁퐁 올라 오고, 남편이 참 자상스럽게 치료를 해 주는데, 남편은 부재중이고,
오후 5시 30분에 집에서 나서야 하는데, 오후 4시무렵 콩을 뽂는 듯 하고는 집을 나설 때는 멀쩡하게 나갔다 왔다.
옥상에서 일 하는 몇시간 둘째 사위가 폰으로 전화를 두번하고, 집전화로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자기는 바뻐서 자꾸 전화를 못하니 장인에게 전화를 하고, 즈그 집에 있는 우리 딸에게 전화를 하고, 그 두사람까지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다가 둘째 사위 전화를 숨가쁘게 받았더니 어머니 어디세요? 뭐하세요?
노동일 했다.
잠깐 식구들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은 허리가 안녕하지 못해서 아주아주 조심 중이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베이거나 하면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붙이거나 붕대를 감거나 했을 때,
그 위에 쑥뜸에 불을 붙여서 핀셋으로 들었다 놓았다를 하면 우선 통증없이 지낼 수 있고, 빨리 낫는다.
이번은 그것도 못했다. 너무 고단해서,
어느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지침을 중급까지 배웠다.
남은 것은 나 자신이 아주 몸살이 날 때 손바닥에 수지침을 놓고, 뜸으로 뜨는 것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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