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 보면 준서할미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도 풍선이 있었다.
그 때 동네 구멍가게를 ' 점방' 이라 불렀고, 높이가 낮은 종이 상자에 풍선이 들어 있고, 밀가루 비슷한 가루가 조금 있었고,
또는 조금 뚜거운 종이에 풍선들이 끼워져 있기도 했었다. 종이 상자에서 진일보한 것이기는 했었지만,
큰 눈깔사탕이란 사탕을 사지 않고, 왜 풍선을 샀는지는 모르지만, 풍선을 사 오면 엄니께서 먹지도 못하는 것을
샀다고 꾸지람을 하셨지만, 그 뒤에도 가끔식 풍선을 사 왔다.
그 때는 어렸으니 풍선이 부풀어 오를 정도의 입김의 힘을 불어 넣지 못해서 결국은 엄니께서 불어 주셨는데,
어른이라도 잘 못 힘껏 분다고 분 입김이 풍선 속으로 들어 가지 않고, 양쪽 볼로 가 버리면 볼이 아파서 쩔쩔 메기도 한 것은
우리 엄니께서도 당하신 일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내가 불었지만, 양쪽 볼이 아픈 일은 자주 당했다.
그러나 색색의 풍선은 불어 놓으면 입김으로 불어서 하늘로 날아 오르지는 않아도 손 바닥으로 위로 쳐 올리고, 내려 오면
다시 쳐 올리고, 그렇게 놀다가 풍선이 터지기도 했다.
불다가 터지기도 하고, 불어서 손바닥으로 쳐 올리다 금방 터지면 눈물 글썽이기도 했었다.
큰 눈깔사탕은 입 속에 넣으면 볼이 볼거져 나오고, 금방 먹는 것이 아까워서 깨어 먹지도 못하고 오른쪽, 왼쪽 볼로 옮기다
결국은 깨어서 먹었는데, 풍선이 터지고 나서야 사탕을 사 먹을 것인데, 후회를 해도 가끔 풍선을 사기도 했었다.
우리가 어려서는 거의 다 우리 손으로 했었다.
중학생만 되면 발이 고운 뽀프린 흰색으로 봄, 여름 교복을 해 입었는데, 일요일이면 씻어서 갈분을 먹이고,
카라를, 춘추복이라면 소매까지 빳빳하게 다림질 하는 것도 오빠 것까지 했었다.
그 시절이야 양말도 귀하던 시절이어서 양말을 밤이면 볼 받아 가면서 기워서 신기도 했었으니,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만 되어도,
바느질도, 다름질도, 동생들 해가 지면 찾아서 데려와서 세수 씻기고,발 씻기우고.....
시골에 살았던, 정말로 산골 시골에 산 것은 초등 고학년, 3년이었지만, 그 때는 황토흙으로 구들장 위에 바르고,
종이로 바닥을 바른 것은 아니고, 왕골인지? 대나무를 아주 얇게 켜서 한 것인지로 엮어서 짠 자리를 흙 바닥에 바로 펴고
살았었다.
오늘은 문득 입으로 풍선 불었던 옛 어린시절의 일이 생각나고,
작은 얇은 고무로 만든 풍선을 불어 놓으면 색색으로 곱고, 두고 보고 싶어지는 그 맘이,
쓰던 가구나 집안의 도구들을 손품을 들여서 재활용하게 하는 것과 연결되어 졌다.
처음 보잘것 없엇던 작은 고무 풍선이 불어 놓으면 멋지게 변신 했었던 것이 준서할미 생각 깊은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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