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하나를 포기하면 또 다른 하나를 포기하게 될 겁니다.

이쁜준서 2016. 5. 18. 07:26






마냥 젊은 줄만 알았다기 보다 나도 늙는다는 것을 인식 하지 않았던, 저도 준서할미가 되었고,

예전 어느 할머니께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 여쭈었더니, 해마다 바끼는(바꿔지는) 나(나이)를 어째 아노?

내가 무슨띠다라 대답하셨다는 이야기는 여자들의 대부분이 건망증을 경험하는 40대 후반에 듣고 깔깔 웃었습니다.

아직 준서할미 본인의 나이가 가물가물 한 적은 없지만, 시어머님 연세는 띠로 한참을 계산해서 알아 놓고는

한 달도 않가서 다시 모릅니다.

시어머님께서 10년도 더 전부터 무거운 화분 들다가 허리 삐끗 한다시면서 꼭 꽃을 키우고 싶거던 화분 다섯개만 키우라 하십니다.


남편이라도 어떤 때는 무거운 것 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또 어떤 때는 해 달라는 말이 하기 싫어서,

옥상에서 큰 독도 굴리면서 옮기고, 분갈이 하지 말자는 큰 화분도 출타중일 때 굴려서 분갈이 하는 장소 옮겨서

분갈이를 합니다.


하하 일은 하지말라는 일을 몰래 할 때, 또 아기들 어릴 때 잠 재워 놓고, 밤에 하는 일이 능률적입니다.




겨울에 이사 오신 2층 아지매는 어제 빨래 널러 오셨을 때는 옥상에서 가죽나물을 말리는 중이였고,

또 빨래를 걷으러 오셨을 때는 장을 가르는 중인데 된장을 치대는 중인 것을 보고는 내가 부탁을 하는데,

이 옥상 꽃 기르는 것을 좀 줄이라고, 그래도 몸살 하지 않고, 넘어 가는 것이 용타고 생각 한다 했습니다.

이  많은 일을 하면서.

실은 올 봄이 시작되고, 아주 심한 몸살도 한번 했고, 두번의 몸살을 더 했기에 일을 쉬엄쉬엄 하고 있는 중인 것을 모르시니.


이제 아주 오래 된 강전지를 하면서 키운 나무 화분은 더 이상 분갈이를 못 합니다.

더 큰 화분에 심을 수도 없고, 그 화분에 넣자면 뿌리를 많이 잘라야 하는데, 수령 오래 된 나무에서 새 뿌리를 못 내면

고사 할 지 몰라도 위에 유박 거름을 올려 주면서 막걸리 한병씩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뿌리가 꽉 차서 물을 주어도 옆으로 내려가니 화분 중앙에는 물을 받아 먹지 못하니 기온이 높아 가면서는

큰 드리이버로 푹 푹 찔러 주어야 하구요. 봄부터 가을 까지 두번은 그리 해 주어야 합니다.

예전 어른들 말씀으로 오래 된 나무는 옮기지 말라 시는 말씀의 뜻을 이제 이해가 됩니다.



옥상의 오래 된 나무들이 저절로 고사하는 때가 있을 것이고 다년생도 세월 따라 꽃이 피고 지고 월동을 하면서,

동사하기도 하고, 이유없이 고사 하기도 할 겁니다.

그러면 화분 숫자가 점점 줄어 들것이고, 체력이 많이 모자라는 때를 생각해서 명자나무를 삽목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40여개가 넘지만 올 해 분갈이 하면서 살음 못한 것이 2개, 나중 나중은 아마도 잘 자란 30여개가 남겠거니 합니다.

세월은 의도하고, 의도 하지 않건간에 사람의 의지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힘든다고 그 눈앞의 일을 포기하면 그 하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던 것이라  다른 것들도 연달아서 포기가 될 것입니다.

일상에서 포기가 늘어나고, 일상에서 즐기는 것이 없고, 일상에서 남을 배려 하지 않는다면 고인 물이 될 것이라 봅니다.


어제도 월요장에서 오랜 단골 자경농은 무데기로 놓고 채소를 파는데, 열무2,000 원 무데기에 또 그만큼 더 얹어서

담아 주었습니다.

손질해서 데쳐서 한 번 반찬을 해 먹어도 두번을 더 해 먹을 것이 남았고,

가죽 말리는 것을 본 이층아지매가 혹여 가죽장아지 맛보고 싶으실까 보아서,( 유렴 반찬이라 실은 적었습니다)

열무 삶은 것 남은 것의 반이상을 덜어 내어 담고, 가죽반찬 조금 담고 가져다 드렸습니다.

나물이 많으면 그냥 주지 삶아 놓은 것을 주냐고? 가죽까지라 해서 가죽은 아까 보신 값이구요라 했습니다.


준서할미는 내가 얻은 나물이나 돈을 주고 산  나물이 많아서 줄 때는 다듬어서, 아니면 데쳐서 줍니다.

그냥 나물 다듬을 때 다  다듬으면  되고, 데칠 때 어차피 물은 펄펄 끓고, 많으면 서너번을 데치면 되고 그래서 그리 합니다.

승훈이 할머니 말고, 다섯살 적은 옆집 이웃 사촌은 아지매는 우리 엄마 같다 하기도 했습니다.



준서할미가 깨알 자랑을 할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이런 것을 자랑거리라 생각 할 나이도 아니고,

죽는 날까지 살아서 뭐가 남는 것이 있을까요?

흘러 가는 물에 집에서 검은 사분으로(비누) 애벌 빨래 해서 흘러 가는 그랑으로 나가서 돌 위에 방망이로 두드려서

흘렁 흘렁 씻으면 빨래는 물살에 따라 내려 갈듯 하면서 깨끗하게 씻어 졌습니다.

다 씻은 빨래 담았던 통을 겨드랑이에 끼고 오는 때는 빨래감이 적을 때이고, 많을 때는 머리에 이고 왔었지요.

하루 중 해가 기웃 기웃하면 그랑에는 쉼 없이 물이 흘러 갈 뿐이고, 우리는 그저 잠시 그랑에서 빨래도 씻고,

여름 밤이면 목간도 하고, 들에서 집으로 돌아 오면서 헐렁 헐렁 고무신 씻고, 발 씻고 갔을 뿐입니다.


인생은 마지막이 되면 사람은 누구나 쥔장이 아니고, 객입니다.

객은 가고 나면 그 뿐입니다.

어찌보면 그랑은 쥔장이고, 우리 사람은 객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