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TV가 친구가 되어서

이쁜준서 2013. 5. 17. 00:28

 

오늘은 울산으로, 올 해 여든아홉이신 외숙모님을 뵈러 다녀 왔다.

몇년 전 교통사고로 고관절 수술을 하셔서 병원에 입원 해 계실 때, 문병을 다녀 오고는

가 뵙는다는 것이 또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가고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외사촌언니랑 전화 연락을 자주 하고 지내기에, 혼자서는 외출을 못하시고, 혼자 큰 집에 사신다고 했다.

아들 셋중 막내 아들이, 주말에 와서 꼭 모시고 바람도 쐬게 해 주고, 외식도 시켜 드리는데,

보일러 기름을 가득 넣어 드려도, 아낀다고, 가 보면 실내 공기는 차겁고,

전기 요만 뜨근뜨근하게 하고 계시고, 혼자  손수 해 드시는 음식도 맘에 걸려서,

겨울 만이라도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씀드려도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 하신다고 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TV소리 크게 해야 하고, 초저녁에 잠시 자고, 한 밤중에 잠이 깰 때가 많으니

또 TV크게 틀어야 하니, 밤 낮이 고르지 않아서,내 혼자 있어야 내 맘이 편하다고 하신다 했다.

 

부산에서는 외숙모님께는 큰딸보다 7살 더 자신 막내 시누이,

서울에서는 큰 딸래미,

준서할미까지 가면서, 혹여라도 점심 준비 하신다고, 하실까 보아 이모님과 준서할미는 간다는 연락을 하지

않고 갔는데, 먼저 도착하신 이모님께서 준서할미에게 전화를 해 오셨다.

점심 준비 다 해 놓으셨으니, 밥 먹지 말고 오라고.

아마도 하루 뒤 당신의 생신을 한다고 5남매 자손들이 다 모여서 어디 펜션으로 옮겨 가 1박을 할 예정이라

손 수 사브작 사브작 반찬을 하나씩 해서 냉장고 넣어 두신 모양이었다.

 

오면서 90노인분께서 큰 집에 혼자 지내시는 것이 맘에 걸리기도 했지만,

자식 집에 동거를 하신다면 얹혀 사는 것이라서 주는대로 식사를 하셔야 하니, 잡수시고 싶은 반찬도 못 해 자실 것인데,

누가 뭣을 가져와 받아 두었다. 당신의 맘대로 자식들 오라고 해서 나눠 주실 수 있으시고,

가면서 준서할미가 두텁떡과 찹쌀모찌를 방앗간에서 해 가지고 갔는데,

저녁에 오께요 하고 장을 보아서 드리고 가는 작은 딸에게도 주고, 부산에서 온 큰 딸 같은 시뉘도 주고

그렇게 사시는 것이, 자식들 집에 얹혀 사시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 좋으실 듯 보였다.

 

낮시간 놀러 오시던 친구 두분께서 한분은 돌아 가시고, 한분은 요양원으로 가셔서 놀러 오실 친구분이 없으신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TV가 친구가 되어서 여러가지를 보시고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니, 자식들 말을 들어 다 헤아리시지는 못하셔도, 당신께서 하시고 싶은 말을 하시고,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멀리 있는 칠십을 넘긴 큰 딸은 어찌 해 드릴 수도, 자주 만날 수도 없어,

친정 엄니 생각하면서 눈물 지을 때가 있어도, 어느 아들이 모시는 것 보다는 더 낫게 살고 계셨다.

사시는 동안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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