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를 상징하는 아카시꽃이 피었다.
준서 할미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들 엄니 세대분들은 대부분 고무신을 신으셨다.
코가 날렵하게 생긴 배처럼 생긴 흰색 코고무신을.
외출이라도 하실려면 한복을 입으셨는데,
평상시에는 좀 칙칙한 색의 통으로 된 통치마를 입고, 위에는 적삼을 입으셨는데,(요즘의 개량한복치마처럼)
주로 여름부터 가을까지의 간편한 외출에 입으셨는데 길이도 약간은 짧았다.
제대로 된 한복치마를 그들치마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교회라도 가실 때에는 제대로 된 한복을 입으시고
옥양목이나 광목으로 버선 코가 날렵한 버선을 신을려면 발이 잘 들어 가지 않아서
힘껏 또 요령껏 신어야 하셨고,
외출에서 돌아 오시면 그 버선을 벗는데, 앉은 자리에서 저절로 몸이 비잉비잉 돌려지게 힘들게 벗으셨다.
인조로 된 한복 속치마를 입으시고 버선과 씨름을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 하다.
버선도, 흰색 코고무신도, 신었다 제 자리에서 벗어도 때가 묻는 것이 표가 났다.
그러니 외출이라도 할려면 깨끗하게 씻어 놓은 코고무신을 날렵하게 신고,마루에서 내려 축담을 내려 가는 것인데,
초등학교도 입학도 하지 않은 고사리 손으로 씻어 마루 끝에 엎어 놓으면, 신으시면서 함박 웃음을 웃으시면서
칭찬을 하셨다.
그렇다고 매번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으니,
옷 다 갖추어 입으시고 나오시니 코고무신이 씻어 있지 않으면,
급하게 씻어서 신으시면서, 또 함박 같은 웃음을 웃으시면서 - 내 손이 내 딸이다 라 하셨다.
그 시절 시골로 전학을 갔을 때,
책가방이 없어 보따리에 책을, 공책을,얇은 양철 필통을 넣고 둘둘 말아서
허리에 묶고 다니고 있었고,
신발은 거의가 고무신이였다.
여자들도 남자 고무신처럼 된 검정고무신을 신기도 했고, 요즘 실내화처럼 생긴 운동화를
천으로 만들었다 해서 베신이라 했는데, 그런 운동화를 신기도 했다.
그 베신을 새것일 때보다 떨어져 헌신인채로 더 오래 신었고,
비가 오는 날은 고무신이던, 베신이던 발은 항상 젖었다.
아마도 그 시절 그렇게 멀리 등교길 걸어 다녀서 요즘도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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