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비 오는 날에 그리운 이들

이쁜준서 2013. 5. 10. 06:56

 

서양 붉은병꽃

비 오는 날 피어 나는 중입니다.

비 오는 날 보니 - 붉은병꽃이라 이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싶습니다.

 

어제 밤부터 비가 옵니다.

예전 시골에서 어른들 하시는 말씀으로

부지런한 사람 촉촉해서 일하기 딱 맞다 하시고,

게으런 사람 비가 와서 일 하다가도 들어 오는  그런 비가 오는 날입니다.

소 쟁기질 하신다고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소 몰고 나가시던 고향 마을의 풍경이 그립습니다.

 

준서할미는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친정 엄니는 술을 하시지 않으셨는데,

 

정월 끝날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날이 2월 바람 달이라고 그 날로 시댁으로 결혼식장에서

바로 왔는데,- 그런 것을 맞잔치라 했었지요.

조상님과 시댁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 식사까지 하고 시댁에서 나왔지요.

 

새 며느리 보고, 우리 시어머님 밤에 외로우시다고,

저녁 식사를 하시면, 동네분들 우리집으로 마실 오시고, 말만 새댁은 느그 방에 가거라 하시면서도

앉혀 놓으시는 것이 좋아서 가실 때까지 그 방에 앉아 다리 아파 해 가면서

구수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집살이가 이런 고역만 없으면 괜찮겠는데....

하면서 동네 어른들과 정이 들었지요.

딱 음력 2월 한달이 친구 새 며느리 질들이는 것이였는지 음력 3월이 되니

밤에 오시지 않았지요.

 

시어머님과 시어머님 친구분들은 담배도 피우시고,

낮시간 비단 홀치기를 하시다가 동네 점방에서 주전자를 들고 가면 돈에 상관 없이 늘 한 주전자를 주었고,

오전에도 한잔 하시고, 오후에도 한잔이 두잔이 되고, 석잔이 되고 그렇게 노시다가는

준서할미는 해가 긴 날 저녁밥을 지어 놓고, 모시러 가면,

그 모시러 간 것이 계기가 되어서, 혼자 돌아 오고 난 뒤

동네 시어머님 친구분들 4~5명이 너울 너울 춤을 추시면서 마당으로 들어 서시고,

마침 정구지라도 있으면 적 하나 붙여 드리고, 아니면 풋김치, 마른멸치, 술 안주랄 것도 없는 것을

두고 또 막걸리 주전자 한잔 두잔 하시면서 춤을 추셨지요.

그 당시는 참 생경했습니다.

여자분들이 담배, 술을 하시고, 춤을 춘다는 것이요.

 

 

병꽃의 만개한 모습

처음 피어 날 때보다 분홍색이 더 짙어져서 지금은 꽃이 지는 때인데도

떨어져서 보면 더 곱게 보이빈다.

 

 

큰 아이가 네살 때,

젊은 에미이던 시절에, 몸이 아퍼서 도저히 아이를 건사하지 못해서,

제 자신도 시어머님이 해 주시는 밥을 먹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기기 미안해서

친정 엄니께서는 장사를 하시고 계셨고,

서울 친정 작은어머님이 우리집에 오셔서 네살 난 아기를 데리고 가셔서 딱 2달을 키워서 기차 역사에서

아기를 만나 데려 왔었던 일이 있었지요.

 

하마 집 들어 오는 골목에서부터 동네 시어머님 친구분들께서,

손에 들린 짐 받아 들고서는 따라 들어 오셨지요.

그 때가 9월22일이었는데, 아기 먹으라고 밤 삶아 온 것, 아기 먹으라고 가지고 온 과자들,

소제지 등등을 술 안주로 내어 놓고, 막걸리 한 주전자로 군대 갔던 아들 휴가 나와서 동네 엄마들

모여 든 것처럼 화기애애한 술판을 벌리기도 했었지요.

 

늘 보는 어른들이시라, 명절이면 박카스 한 통을 명절 전날 밤에 들고 인사를 드렸고,

입 맛 없는 봄날 찰수제비 해서 오시라 했고, 손국수 넉넉하게 하고, 수제비 넉넉하게 해서는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비단 홀치기 하시다 오시라 하면 우르르 우리 집에서 점심을 잡수셨지요.

 

우리 아이들 골목에 나가면 과자 봉지 손에 쥐어 주셨고,

운동회나 소풍날에는 음료수 사 먹어라 하시고는 돈 손에 쥐어 주셨지요.

아이들 소풍날이나 운동회날에는 동네 젊은 댁들 준비 한 음식 점방에 두고 가면,

동네 어른들 모여서 잡수셨지요.

 

그 동네에서 이사 나오기 전 날 인사하러 갔었던 어느 댁에서는

우리 영감이 우리 며느리 이사 갈 때보다 더 섭섭하다 하신다고, 다락에 먹을거리 우리 아이들

주라고 가지러 올라 가신 영감님 이야기를 하셨기도 했었지요.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 날이지만 -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남편 없는 친구 며느리 질 들인다고, 한달씩이나 삼삼오오 밤에 친구네 집으로 모이는 일도,

저녁 때, 막걸리 주전자에 변변한 술 안주도 없이 마시면서 너울너울 춤 추시는 일도

없어진 인정이고, 정경입니다.

 

참 그리운 분들 이십니다.

세상 소풍길 마치신 분들도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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