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사촌 형제들이 11명이고, 그 중 한살 위 사촌언니 다음으로 준서할미가 두번째 서열입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와 중학교를 다닐 때, 부산 큰집으로 오면 책을 좋아하는 것으로 죽이 맞는 사촌 언니와 책방에서
책을 대여 해서 말로 표현하면 주구장창 책을 읽었지요.
책이 수준에 맞고 않맞고는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그 시절은 요즘 같은 놀것, 즐길 것이 없던 세월이어서 우리 같은 꼬맹이가 아닌 낮선 총각,처녀들이 처음 만나서
인사자리에서 취미가 뭣이냐는 질문에 독서- 책읽기라 하지 않고, 독서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얼른 읽고 대여 한 날 반납을 하면, 다른 책을 무료로 빌려 볼 수 있었습니다.
꽃기린
중학생 준서할미는 울산군으로 나와서 중학교를 다녔고,
사촌언니는 부산에서도 제일 좋다는 여자중학교 두곳 중 한곳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는 준서할미도 부산으로 나와서 다녔고, 사촌언니도 제일 좋은 고등학교는 다니지 못했지만,
타고난 예술적인 감각이 그 때부터 내면적으로는 남달랐을텐데, 집안에서는 몰랐었지요.
인물도 배우를 해도 좋을만큼 조각처럼 생겼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별한 직장생활을 하다
사진을 전공하시는 대학교수님들도 알게 되어서, 20대 초반에 부산시공보관에서 돌을 주제로 사진전시회도 했었습니다.
전시회에 가 보니 사진도 반이상은 예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블랙베리
밑으로 남동생이 셋이나 되니, 맏딸이라도 대학공부를 시킬 생각이 없었고,
몇년 평범하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대학 연극영화과에 청강생으로 들어 갔습니다.
중간에 편입이 되어 졸업은 정식으로 했습니다.
그러더니 초창기 때는 영화포스터에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이 나와 있었고,
또 몇년이 흘러가니 TV 특집극의 작가로 간혹 나왔습니다.
책도 몇권 내었다 하는데, 준서할미는 그 책을 못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때는 대필작가를 한다는 말도 들리고,
걸스카우트등의 전국 행사를 기획하기도 한다는 말도 들리고,
그러다가 집안 경사 때 가끔 만나고, 사촌언니에게는 아버지이고 준서할미에게는 큰아버님이 돌아 가시고 초상에서
첫날에부터 만나서 산소에 모셔지는 날까지 보았습니다.
평소 우리네 안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전혀 모르고, 집안의 친척들이 와 보시면 - 그 참 이상타 하실 정도의 행동을 했었지요.
지금은 어떻게 나무랐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준서할미가 나무랐던 모양이고, 자기 여동생이 미국에서 나오니
" 좀 뭐라해라. 내편은 아무도 없고, 모두가 야 편인데, 내가 언니인데 자꾸 지가 나한데 야단을 친다"고 했지요.
"언니가 잘 했으면 뭐라 하지 않았겠지" 라 타박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장지로 모시는 날
장지에 가니 상주인 맏 자식이 사진기 들고 모시는 것도, 장지 주변도 사진을 찍는다고 여기 저기 뛰어 다녔지요.
광목 상주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들고 뛰어 다녔지요.
친척들 눈치 보아 가면서 언니야~ 언니야~ 불러 모셔지는 곳으로 불러 놓으면 또 사진기 들여 대고
파 놓은 곳도 찍고, 파 놓은 흙도 찍고, 사람들도 찍고, 사진기는 찰칵 찰칵....
정말 묘지에 모셔 지기 직전에는 사람들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는 지금부터는 사진도 찍지 말고, 어디로 가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장례는 끝나고 저는 장지에서 밀양역으로 가서는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으아리꽃
그 때만 해도 우리 사촌언니는 다른 사람들보다 선도 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작가이다 보니 사진을 찍어다 놓으면 사진을 보면서 글을 쓰는데 참고도 되었을 것이고,
설겆이 한번 하지 않고, 친척들과 차리는 예의적인 인사도 할 줄 몰랐던 언니가 오로지 작가 입장에서
자기 아버지 가시는 길에도 그렇게만 보였을 것인데,
그 때는 30대 준서할미는 이해를 하지 못했지요.
지금 같았다면 친척들이 못 마땅하셨다 해도 준서할미가 앞 서서 이해를 시킬려고 노력 했을텐데요.
한련화 외
준서할미는 주로 풍경사진이나 꽃사진을 찍으니
그래도 남들 눈을 덜 의식하지만, 만약 사람을 담는다면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고,
그 구하는 과정이 쉽지만 않아서 주책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싶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것은 때로는 일상에서 위안도 될것이고, 때로는 남들에게는 철 없음도 될것입니다.
작은아버지가 돌아 가신지가 몇년이 흘렀고, 그 49제 때에 일주일에 한번씩 사촌언니를 보고는
몇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집안의 경사에는 참석을 하지 않습니다.
부조만 자기 형제들 편에 부칩니다.
오늘은 그 사촌언니가 생각이 났고, 요즘 준서할미 사진기 들고 꽃사진 찍는다고 꾹꾹 눌리고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우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났고,
어릴 때 같이 자라서 그 사촌언니가 보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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