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우리집밥이 늘 늦었다.
친구들이라 해도 다 고모뻘이고, 육촌 동생이고 했는데
나를 기다려 같이 가면 가면서 뛰기도 해서 그 전날 뛰어 겨우 지각을 면한 날은
기다려 주지 않고, 우리 먼저가께 하고는 아이들이 가버렸다.
청소년기가 되어 생각해 보니 왜 아이들이 뛰어가야 겨우 지각을 면할 정도인데도
한번도 아니고, 자주 나를 기다려 주었겠나?
먼저 간 것은 당연지사인데, 그 때는 어찌 그리 섭섭했던지?
집에서 출발해서 철로 둑 밑으로 난 길로 걸어 가다가는
철로와 국도가 만나고, 철로는 논 밭 사이로 둑이랄 것도 없이 길도 없어지면
국도로 가고 아마도 두서너번을 바꾸어 가며 갔었지 싶다.
동네에서 나오면 철로 둑길 밑으로 길이 있으니 우선은 그렇게 시작하는 길을
아이들이 먼저 가버리면 철로둑을 넘어 국도로 나가서는
가로수로 있는 버드나무 100개를 뛰고, 10개를 걷고
학교까지 그렇게 갔다.
면사무소가 있는 읍내에서 먼저간 아이들을 지나게 되면 아이들은 반가워 부르는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뛰어서 오면 아이들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했었다.
내 목표가 너그들보다 내가 먼저 학교에 들어 갈거라는 마음으로 뛰어 왔으니....
그렇게 한 무리지어 가다보면 이야기로 꽃을 피워도
철로 바로 위 야산의 진달래도 보이고
논둑의 조팝꽃도 보이는데,
버드나무 100개를 뛰고 10개를 걷고 그렇게 오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눈 앞의 자갈돌만 피해 디딜려고 앞만 보고 달리니 그런 것이다.
시골 장날 장거리를 해서 머리고 이고,
한 마을에서 같이 길을 나서면
장날 나갈 때는 그 발걸음이 참으로 빠르다.
그 때 엄니분들은 재주도 좋으셔서 그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서도
팔을 흔들면서 서로 서로 이바구도 하시면서 걸으셨는데도
뛰지 않으셨기에 주변 풍경이 보이고, 옆 사람의 이바구도 다 들리는 것이였다.
걷기보다는 뛴다는 것이 목표 달성이 조금은 빠를지도 모르나,
10~20년을 그렇게 옆도 쳐다 않보고 살다가는
몸은 약해지고,
현직에서 물러나면
앞만 보고 달려 왔기에 내 주변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내가 도움을 줄 처지가 못되어 없고,
인정을 나누고 살아 온 것이 아니니
정으로 남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월요일은 꽃나무를 사러 화훼도소매 단지로 갈려고 한다.
아직 날씨가 추워서 화려하게 핀 꽃들은 적겠지만,
묘목은 많이 나와 있을 것이다.
아직 꽃나무를 사러 나갈 수 있음이 좋다.
꽃을 좋아하는 친구와 어제 약속을 잡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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