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이 본
오늘 모임한 친구 중에는 생활력이 아주 강한 친구가 있다.
아들 둘은 큰 아들은 결혼을 해 직장따라 서울에 가 있고, 작은 아들은 직장따라 부산에 가 있는 사람이다.
간병인 교육을 받더니, 간병인 일을 하는데, 그 간병인 일이 돌보는 환자의 상황경중에 따라 힘이 덜 드는 환자를 만나기도 하고
중증일 때는 힘이 더 드는 모양이었다.
또 가는 거리가 가까우면 더 좋고.
이번에 새로 만난 환자분은 여든이 넘으신 분이시고, 남의 손을 빌어 지내는 것이 20년이 넘었다는 할머니신데,
아들 둘이 의사이고, 사위 둘이 의사인 집인데, 형제들이 돈을 모아서 큰 아파트에 24시간 가정부와 함께 그 어머니를 모시고,
막내 며늘이 들락거리면서 장을 보도록 가정부에게 약간의 돈도 주고 또 필요한 대부분을 장을 보아다 주더라 했다.
할머니가 중증이다보니 간병인 제도가 생기고부터 간병인을 두었는데, 때로는 자식들이 맘에 들지 않아 그만 오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중증인 환자를 간호하기 너무 힘이 들어 간병인이 그만 두기도 했었다는데,
친구도 갔더니 너무 힘이 들어 한달간 하고는 그만 하겠다고 했더니
힘이 들어서 그렇다면 최대한 힘이 들지 않게 도우겠다 해서 환자용 침대와 에어시트를 깔아서 해 달라 하고
매일 휠췌어에 태워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데 혼자서 침대에서 휠체어에 앉히기가 힘드니 일주일에 한번만 물리치료를
하자고 요구를 했더니 요구대로 다 해주더라 했다.
환자용 침대가 많이 수월하게 해 준다고 했다.
갔더니 가정부가 시장 보는 돈에서도 좀 떼어 내고, 시장 보아 온 식재료로 음식을 해도 자기 먹는 것이 위주이고
흰죽 한 냄비 끓여 놓고는 닭을 삶아 그 국물에 흰죽을 섞는 것이 닭죽이고,
쇠고기 넣고 미역국을 끓이면 미역국에 또 그 흰죽을 섞어서 드리는 것이고,
아침마다 막내며느리가 전화가 오면 밥 촉촉하게 해서 닭삶아 말아 드렸고,
밥 촉촉하게 해서 미역국 끓여서 말아 드렸고,
잘 잡수셨다 하면,
닭을 잘 잡수신다 하고는 일주일에 꼭 1~2회 닭을 사오고,
다른 아들들이 어쩌다 과일 상자 들여 주는 것은 사과가 그리 아주 크고 좋더라 했다.
하나 깍아서 한번에 다 먹지 못하면 남는 것 모아 두었다. 믹스기에 갈아서 사과주스라 드리고....
아무리 보아도 마땅치가 않아서
어머니(환자를)가 있어 당신이나 내가 이 집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비록 말을 제대로 못하시고,
일어나 앉으시지 못해도 어머니가 주인이시니, 당신은 당신 식사만 하고 어머니 식사는 내가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니
다른 간병인은 그러지 않던데 별난스럽다고 한판 했다고 했다.
이제 음식 드린것도 기록을 할 것이라 했다면서
형님 저는 도저히 내 양심으로는 그 사람처럼 할 수는 없어어요라 했다.
딸, 며느리
그 친구는 딸이 없다.
아들들은 누구집이나 아들은 맘만 있지 실제로 환자가 된 어머니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없고,
며느리는 딸하고는 다르더라 했다.
치매병동에 있은적이 있는데, 환자가 변비가 되면, 며느리들은 와서 변을 잘 볼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라 하기만 하고
딸은 그 환자 어머니 부축해서 화장실로 가서 배를 문질러도 드리고 손을 붙잡고 같이 힘을 쓰기도 한다 했다.
가정집에서 있을 때는
농가였는데, 족발을 사와서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아들이 엄마도 좋아 하셨는데, 막걸리 한잔 드려라 했더니
또 또 그런다. 잡수시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한다.
나도 좀 먹고 쉬자. 다 먹고 챙기께요라 하더니
아들은 다시 나가고 며느리는 그 뿐이었지만,
딸은 오면서 쇠고기 사와서 어머니 죽 끓일 때 넣어드리라 하기도 하고, 올케한테 잘하면 내 엄마에게 올케가 잘 하겠지 하면서
올케 수고 많다고 인사하면서 올케 용돈도 쥐어 주고 가더라 했다.
병동에 있어 보면 거의 며느리이기보다는 딸이 면회를 온다고 했다.
오래 된 환자라면 더 더욱이.
준서할미 말이
친구를 위로할 맘도 있었지만, 실상 현실이 그렇기도 하기에....
직장생활 하는 딸들이 그것도 객지에 있다면, 한번 훌쩍 왔다 가면 그만이지 설령 집에 환자인 부모님 있던가, 병원에 있던간에
잠시 잠깐 보고는 다시 그날로 갈 수 밖에 없는 세상으로 변했다 했다.
친구의 아들들
서울에 있는 큰아들은 평소도 말수가 적었는데,
그래도 한달에 한번 문안 인사 전화가 온다고 한다.
" 별일 없지요?
" 너희도 잘 있지?"
" 녜"
" 아픈데는 없어요?"
" 아픈데 없다"( 실상 아퍼도 오지도 못하고 맘만 심란하게 만들 것이라)
" 잘 계셔요"
아픈데 없이 잘 있다고 하는 대답을 하면 잘 계신다고 생각하면 즈그덜 맘이 편할 것이고,
정말 아퍼도 먼데서 온다해도 한두어시간 있다가 얼굴 보고는 그만 갈것이고, 아니면 병원가세요가 다 일것라 했다.
그 친구 작년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참 많이 아픈 날이 많았었는데.....
그 큰 아들이 출장을 왔다면서 집이 아니라고 하니 어머니 계신곳으로 갈계요라 하더라 했다.
찻집에서 한시간여 이야기를 했는데, 점심 같이 할려고 왔더니 어머니 약속이 있으시다 하시니
그러면 저녁에 집에 와서 저녁밥도 먹고 자고 가거라 했더니,
"출장 온 회사에서 숙소도 잡아 주고 식사도 다 해결 해주니 오늘 자고 내일 바로 갈께요"
" 돌아 가면 곧 상해로 갑니다. 1년에서 1년반 정도 기간을 예정하고 갑니다."
아~하 상해를 간다고 출장 온 김에 날 얼굴 보러 왔었구나.
딸이라면 미리 상해로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화로 했을 것이고, 상해로 그렇게 장기간 가 있는데,에미 곁에서 하룻밤을 자고 갈것을....
작은 아들은 싹싹하다 했다.
출장길에 우리 지방으로 오게 되면, 잠깐 보자고 하고,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고 저녁 먹으러 가겠다 하고
엄마가 해 주는 저녁 먹고, 부산이니 그 밤에 부산으로 가기는 해도, 찾아 온 아들에게 저녁 해 먹이는 것도 행복이라 했다.
어떤 날은 전화를 해 놓고는
" 잘 있느냐?"
"녜, 그런데 엄마 음성이 듣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 할 말이 없으면 빨리 잠자거라"
그래도 큰 아들보다는 낫다라 했다.
친구는 딸이 없어 서럽다 했다.
성장하고 제 갈길을 찾아간 자식들이 저 무대에 관객이라면
딸은 공연이 마치고 떠나는 하나의 관객이라도 된다면
아들은 저 춥고, 딱딱한 야외무대에 관객도 되지 못하는 걸까?
세상이 변해서 직장이란 곳에서도 끊임 없이 배워서 실력을 키워야 살아 남을 수 있고, 또 맡은 일들도 벅차고,
즈그덜 사는 것만 해도 바뻐서 부모 챙기가면서 살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딸이나, 아들이나 다 바쁜 세상의 현역들이라 한치 차이도 나지 않지 싶다.
반치정도는 차이가 날까?
그것도 맘 쓰는 것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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