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할미는 에쉰을 넘긴 사람이다.
어찌보면 세상사 잡다한 것에서는 감성의 문을 닫고 사는 세대라 젊은이들은 생각하는 그런 세대이다.
살아오면서 나의 주변의 일처럼 가슴이 아펐던 것은 여배우 이은주의 죽음이었다.
연예인의 그런 죽음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한창 필려는 꽃몽오리가 피지도 못하고 간것에 몇일을 가슴 아파했었다.
탈렌트이고, 배우인 마약사범으로 구속되어 있는 - 김 성 민 - 의 소식에 그 때처럼 가슴이 아퍼다.
백번이고, 만번이고 그런 일을 자라나는 청소년의 표상이 되는 자리까지 올라간 배우가 그러면 않되는 일이다.
왜 몰랐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처럼의 화려함과 당당함 보다는 끊임없는 대중의 인기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출연섭외가 있을 것이고,
또 같은 배우들끼리의 경쟁에서도 살아 남아야 하는 이중 삼중의 스트레스가 있기는 할 것이다.
속옷 모델로 시작한 그의 지난 날이 그리 부유하게 보이지도 않았고,
- 인어아가씨- 란 드라마에서 보여준 것처럼 핸섬하고 고급스럽기만 한 것이 아닌, 남자의 자격에서 별칭 - 김봉창 - 같은
이미지로서는 김성민 개인이 원하는 멋진 주인공이고 싶어 하는 것과, 섭외 오는 드라마의 역활과는 맞지 않아 고민도 했을 것이고,
바닷속으로 들어간 해녀가 몸 사방으로 조여 오는 압박감이 있는 것처럼, 그가 느끼는 연예계는 그러 했을지는 모른다.
남자의 자격이란 좋은 프로그램을 만나, 성실한 노력으로 이제 부각되어 가던 때에 , 필려던 꽃봉오리가 서리를 맞은 형국이다.
필려던 장미꽃봉오리는 그 색상과 형태는 그래도 남아져 있는데, 호박잎이나 고추대의 잎은 삶아 놓은 듯 영 죽음인데,
아무리 풋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도 하룻밤 된서리를 맞은 고춧대 같아 졌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가까운 장래에 재기 할 듯이 보이지는 않는다.
같이 출연 했던 - 이정진- 란 배우가 위기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는 재빠른 글도 올라오는 지경이다.
준서할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정진은 배우이지 연예인이 아니니, 프로그램에 출연 하는 중에 도망자란 TV드라마에 출연 했던 것처럼, 좋은 작품으로
그 이름이 살아 남아야지 연예인으로 살아 남을 사람은 아니라 본다.
이정진은 갈고 닦으면 대 스타가 될 수 있는 그런 배우인 것이다.
그러나 출연하고 있으니 남자의 자격이란 연예프로그램에서 이정진도 자신의 주어진 몫은 해야 하지 않겠나 정도이지
김성민과 이정진은 그리 각을 이루면서 경쟁을 했던 관계는 아니였다 생각한다.
-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은 어제의 송년의 밤 행사로
합창대회 참가로 쑥쑥 올라가 대장격인 -이경규-씨가 연예대상까지 점치던 그 인기를 김성민으로 하락세를 타다가
이젠 안정세로 돌아 섰다고 본다.
왜?
그런 해서는, 절대로 않되는 일을 하면 언젠가는 발각 될 것이고, 발각되면 배우로서의 생명도 끝이 난다는 것을 알것인데
왜 그랬을까? 참으로 안타까워 진다.
김성민씨가 지은 죄만큼의 합당한 벌을 받고,
그 후 처지를 비관만 하지말고, 노숙자들 중에는 자식을 버리고 나 올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아내도 집을 나가 버려서
어린 자식을 고향의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당신 혼자서 키우고 있어도 찾아 가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 도움도 못되고,
그렇다고 죽지도 못해서
베풀어 주시는 곳이 있어서 하루 한끼니 밥으로 연명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어린자식을 노모에게 맡기고 죽지 못해 사는 노숙자 보다는 그래도 김성민씨는 덜 절박할 것이다.
그보다 더 바닥으로 내려가는 삶이 이어지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연기에 대한 념도 끊지 말고, 10년이 몇번 지나간 뒤라도
진정한 연기인으로 딱 한편을 하더라도 모두가 감동하는 연기를 목표로 살았으면.... 바래 봅니다.
피어나던 젊은이라, 이젠 노력을 하면 인정을 받고, 기회도 오는 스타덤에 오른 배우였던 지경의 젊은이라
아무 상관 없는 준서할미가 가슴 아픕니다.
우리 동네엔 맞벌이 하는 젊은 엄마들이 있고, 전업주부로 살아도, 밤이면 비슷한 연배들끼리 노래방으로 회관으로 즐기러
가면서 아이들은 통닭이나, 피자나, 자장면을 시켜 주고 남편이 없는 날 나가는 젊은 엄마들을 봅니다.
화장하고 옷차려 입고 나가는 때 보면 정말로 저렇게나 이뻤었구나 싶습니다.
제 나이 쉰의 마지막 해에 30대들과 함께 하루 8시간도 더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트레스를 술로 , 수다로 풀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자식을 알뜰하게 챙기지 않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어서 가슴의 허허로움을 가정에서 풀지 못하면 어디에서 풀까? 라 생각해 보면
가슴 아퍼지고, 그 세대들이 주인 된 앞으로가 걱정이 되는 준서할미 입니다.
이 세상의 할미님들이 자기 손자들만이라도 그런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기를 바라고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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