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기다려 맞으 주었던....

이쁜준서 2009. 3. 26. 00:13

 

막내 시동생이 중학교 들어가는 해 정월에 결혼을 했다.

양력 3월에 중학교를 입학을 했으니  결혼해서 두어달 살다 입학을 했을 것이다.

중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게 되었다.

원체 수줍던 성격이었는데, 대학생이 되고는 술을 어찌 그리도 많이 먹고 다녔던지...

대문은 강철대문이었고, 우리방에서는 대문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동생이 들어오지 않으면 기다리다 깜빡 깜빡 잠들기도 했는데, 자는 것이 아니어서

벨을 누르면 문을 열어 주었을텐데, 

미안하니 아주 늦으면 대문을 타고 넘어 오는 때도 있었다.

그러면 대문소리가 덜컥덜컥 거리게 되고, 준서할미 " 나갑니더" 

시동생 " 다 넘어 왔심더"  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때 그 시절에는  남편이나 아들이 아니어도 그렇게 집 나간 식구들을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깜박깜박 자불면서 새벽까지도 기다리는 것이 였다.

 

      정성과 정을....   감사한 맘으로...

                               귀한 것이라 아이들에게도 준....

 

 

 

이 집으로 이사를 와서는 식구들이 열쇠를 다 갖고 다니게 되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자율학습을 하고 마치는 시간에 학교로 데리러 갔다.

두 아이 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밤 12시에 학교에서 나올 수 있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도서관에서 공부라도 하고, 시내버스 막차를 타고 오는

때는  올 때까지 기다리고,

혹여 늦게라고 오는 날은 옥상으로 올라가 내려다 보기도 여러 차례였다.

시동생 때나 우리아이들 때나 식사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때도 옆에 앉아 있어 주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있으니 도시락도 두개씩 가지고 다녔다.

 

 

                      정성과 정을.... 감사한 맘으로...

                                귀한것이라 아이들에게도...

 

 

 

 

 

그 시절은 준서할미만 그렇게 귀가하지 못한 식구들을 자정이 되고,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에도 기다린 것은 아이었다.

각 가정의 엄마들은 다 그랬다. 맞벌이를 해도 그렇게 살았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거의 맞벌이를  한다.

초등학생이 되고부터는 각자 열쇠를 갖고 있다.

초등학교를 파하면 학교 문 앞에는 학원차가 와 있고, 학원을 마치면 집 근처까지

학원차로 오고, 그 시간 부모가 없어도

열쇠를 열고 집으로 오는 경우마저 있는 것이다.

그 어린아이들이 텅빈 집에 들어서 간식을 찾아먹고 TV나 컴퓨터를 켜고 있다보면

직장을 나갔던 엄마가 올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니 그렇게도 자라는 것이다.

 

                      정성과 정을.... 감사한 맘으로

                                             요즘 된장찌게에 넣는...

 

 

 

그러니 초등고학년이 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가면서 부모와 대화가 없어지고,

부모는 그냥 울타리가 되는 것이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고, 식구들을 위해 챙길것도 많고, 그러니 잠 잘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된  맞벌이 주부가 남편 오도록 자정까지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현관문이야 각자 열쇠를 갖고 있을 것이고, 번호키로 되어 있으니 하루 일과의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와도

기다려 맞어 주는 엄마와 아내가 되어 주지를 못한다.

아침에는 먹는둥마는둥이고, 점심도 도시락이 아니고, 학교에서 학원에서 급식으로

먹게 되고, 저녁밥도 고등학생만

되어도 급식으로 저녁밥까지 해결된다.

일주일에 한두어번 식구가 다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양호한 것이 요즘의

우리네 모습이다.

 

                        직접 농사지었던 김장배추

                            아이들과 내동생들에게도 간 김장김치...

 

학교급식과 매식으로 자랐고, 기다려 맞아주는 엄마가 없이 자란세대들이 10여년쯤 있으면 그들이 부모가 되는 것이다.

나라에서 큰틀에서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에게나 형제에게 특별한 애착 없이 자란 세대들이 되어 간다면, 나라에 대해서도 애착이 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지식도 가르쳐야 하지만, 올 곧은 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교육도 필요 할것이다.

 

준서에미 세대들만 해도 그래도 늦게 오면 기다려 주었고, 길까찌 마중을 나와 주었고, 부모가 차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데리러 간 우리세대가 키운 것이다.

잘못 한것이 있으면 자녀들 눈치 않보고, 훈육을 할 수 있었다.

요즘은 부모가 자식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음으로 닿아 있지 못해서, 부모의 훈육이 잔소리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엄마가 없는  시간에 조부모가 돌보아 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앞으로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전업주부가 정성으로 키운 아이들이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지식만이 경쟁력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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