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삼남매를 남편에게 주고 이혼을 했던 사람이 있다.
거구이다. 체중이 80Kg 이 나간다 했다. 여자치고는 키도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가는 사람이다.
오일장을 다니면서 억척스레, 채소 장사를 해서 지금은 땅도 있고, 한달에 세가 300만원 정도 나오는 원룸의 건물주이기도 하다.
자기집 원룸 한칸에 살면서, 작년부터는 일주일에 한번 가는 요일장에 나가 장사를 해 이익은 불우학생 도우기에 낸다 했다.
오일장을 돌면서 장사를 하던 몇년 전 한 오년간은 대학 신입생 등록금도 내어 주기도 했었고, 노부부에게 한달에 20만원식 고정으로 주기도 했다.
올해 환갑이다.
몇년전 장학금을 주고 있던 때에 뭔 일이 있어 겨울에 그집엘 가게 되었다.
그런데 방에는 난방을 하지 않고, 전기요에 불을 넣고 그렇게장사를 가고, 일요일은 교회를 가고, 그러니 동네 사람들과 섞일 일이 없었다.
다른 가족이 있었다면, 그래도 들고나고, 사람사는 것 같았을 것인데, 단지 혼자이니 더 그랬다.
동네에서 단지 준서할미만, 가을에 김장김치를 맛 보라고 주었다.
요일장 하루만 장사하는 작년부터는 여름에는 인근대학 도서관에 가 책을 보다 오고 했다.(시원하다면서)
집에서도 책을 사 읽으니, 참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기도 하다.
준서할미가 댄스스포츠 교실에 가 한달 반 정도 다니다, 그날도 운동을 가려고 나가다
보게 되었다.
어디가느냐?
운동하러 간다, 갈 생각이 있으면 다음 갈 때 낮 11시에 집 앞에 나와 있거라
그러그러해서 같이 운동을 간다.
이제 한달여가 되어 가는데, 아직 음악에 맞추지는 못해도 어제서야 발동작을 맞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 초보반 젊은이 하나가 가르쳐 주었는데, 너무 못하니 아예 그사람 근처를 오지
않고, 앞쪽에 가 있고, 선생님은
몇번 해 주고는 늦게 온 사람을 가르쳐 주라는 말만 하고, 그래서는 배우기나 할런지
싶었다.
시작해서 얼마간 하면 할수록 동작이 어려워지고, 그래서 하다 그만두는 사람들이 생긴다.
할 수 없어 준서할미는 여자스텝이고, 그이는 남자스텝인데, 준서할미가 남자스텝을 배워서 가르쳐 주었다.
서너살 아이 밥 떠멱여 주듯이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다.
밑바닥이 아주 얇은 전용신발을 신어야 한다.
강사가 가져오는 것은 빨리 떨어진다면서, 내가 나가 좋은 것으로 사 신을거다 하면서 아직도 신발을 사지 않았다.
우리가 운동하는 그 분위가 참으로 좋다고 한다.
5~7년씩 한 사람들은 균형잡힌 몸매와 날개를 단듯이 움직이는 동작하며, 쾅쾅거리는 빠른 음악하며, 지금껏 만나 볼 수 없는
분위기인 모양이다.
구경만 해도 좋다. 이렇게 날씬하고 젊은 사람을 내가 어찌가까이에서 보고, 같이 이야기 하겠는가?
때로는 30대와 40대를 안아보자면서 안기도 한다.
80Kg 의 거구가 배우다 않되면, 양손가락을 머리에 넣고, 입은 삐죽이 내어 밀고, 딱 만화캐릭터 같은 표정이 된다.
또 때론 천진스런 웃음을 웃으면서 남들이야 뭐라던, 이야기는 혼자 다 한다.
남들과 눈높이를 맞출줄 모르니 이야기 하면 모두 웃고, 또 때때로 책, 신문, TV를 본 종교, 경제, 시사문제를 이갸기 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젊은 축들이 앞 쪽 강단쪽으로 가버리기도 하고 그렇다.
남편이 바람도 피웠고, 포카도 했었고, 그래서 이혼을 했다고 했다.
누가 참고 살아야 한다고, 잘 타일러 주는 사람도 없었고, 친정에서도 이혼을 권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했다.
혼자 살아온 세월이 오래 되어서 타인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 어제는 준서할미가 한소리를 했다.
신발 한켤례 17.000 원 주고 사면 적게 신어도 6개월은 신는데, 뭐하러 그렇게 남들과 맞추지도 않고, 집에서 신고 온 신발을 신고 운동을 하느냐?고.
(실내라 전용신발로 갈아 신어야 한다, 준서할미만 아니었다면 한소리 들었을텐데...)
살아가는 계산은 세세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주먹구구로 하고, 내가 조금은 손해 볼 수도 또 덕을 볼 수 있다 생각하면 될거 아니냐고.
내가 수월하면 남도 내게 수월해져서 그런대로 살아진다고 했다.
준서네를 갔다오니, 가기전 호박죽을 끓여서 한양재기 준적이 있었다.
나중 설명을 들으니, 팔던 열무가 6단이 남았고, 하룻밤을 자고나니 누르스럼해 졌다 한다.(6월말이었다)
버릴수가 없어 열무김치를 담구어서는 세집을 줄려니, 또 통3개를 사면서 6,000원이 들었다 했다.
나가는 교회분께 연락해서 한통은 당신 자시고, 한통은 성가대 반주자 주라했고, 기름쓰고 왔기에, 또 집에 있던 찹쌀 반되씩 주었다 했다.
내가 힘들게 담은 것이니 버리지 말고 먹어라고 했다.
열무는 삶은 것 같았고, 된장국처럼 되어버린 그 김치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물질적으로는 아무 아쉬울것이 없는 사람인데도, 자기를 진정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아쉬웁고, 또 눈높이를 맞출줄 모르니
동네 비슷한 연배들과도 섞이질 못한다.
형제들도 만나면 손을 벌리고, 그 손벌림이 끝이 없으니 가까이 하지 않는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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