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사람

퇴직 후의 생활...

이쁜준서 2008. 12. 29. 00:23

친구네의 이야기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친구남편은 술 좋아하고, 사람좋아 하는 사람이었다.

술을 좋아하다보니, 어느 좌석에서건 술이 취해 있었고, 그 취한 기운에 생각을 해서 말을 하기보다는 생각나는대로 말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려느니하고 봐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때 주머니에 오만원을 넣어서 나가면 비슷한 친구간에 고스톱을 치게 되고, 고스톱 친 돈으로

밥도, 술도 먹는 그런 자리가 이어졌다.

직장도 가지 않고, 매일 오만원으 가지고 나갈 수도 없고, 나가지 않으면 풀이 죽어 있고, 그래서 그 친구가(안사람) 택한 것이,

어느 시골의 못가에 텐트를 치고 살자고 했다.

원체 낚시를 좋아했으니, 친구가 불편한게 많았지, 그 남편은 종일 낚시 하다가, 텐트에서 자다가 잡은 고기를 동네어르신들을

만나면 드리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친구들이 찾아가면 매운탕을 해서 먹었고, 산천어를 잡게 되면 회로도 먹었다.

농사용 전기를 당겨서 냉장고를 사용할 수 있고, 전깃불도 사용할 수 있었다.

엔간한 비는 텐트에서 지냈고, 태풍이라도 온다하면, 마을에 빈집을 하나 얻어 놓았기에 마을에 들어갔었다.

 

고생한다고, 처가쪽 형제들과, 결혼 한 딸 둘이, 양쪽 친구들이 찾아 갔기에, 읍내에서 전화를 한다.

무엇이 모자라느냐는 전화를 하면, 필요한 것을 말하고, 대개는 돼지고기, 쇠고기를 사 갖고 들어가, 고기를 구워먹고,

잡은 고기로 매운탕도, 냉동된 빙어로는 튀김을 해 먹고 왔고, 파와 풋고추는 심어 놓아서 언제든지 따 먹을 수 있었다.

안사람은 봄에는 산으로 올라가 고사리도 꺾고, 산나물도 하기에, 그낚시터로 가면 가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나들이였다.

 

준서할미도 친구들과 함께 가 1박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 못가에는 그런 아저씨가 세분이 계셔서, 남자들은 다른집 텐트에 가 잠을 잤고, 여자들은 친구네 텐트에서 잠을 잤다.

4월쯤이었는데, 날씨가 차가워서 텐트 안 흙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스티로폼을 깔고, 직경 1미리 정도의 호스가 지나고, 그 위에 스티로폼을

또 깔고, 그 위에 나들이 자리가 깔린 온수가 흘러서 바닥이 따뜻해 지는 그런 장치를 해 두고 있었다.

바닥은 따뜻했고, 여분의 이불도 있어 비록 텐트에서 잠을 잤어도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평상도 갖다 두고 있어, 식사는 평상에서 먹을 수 있었다.

 

한겨울은 마을에 들어가 살고, 해동이 되면 연못으로 나와 살고, 그런 생활을 3년인가 하더니, 이젠 시골에 집을 하나 장만해서

바깥분은 동물담당, 안사람은 농사담당이라 웃으며 말한다.

몇일 전 송년모임이라고 시골에서 올라온 그 집 아저씨는 여전히 술도 담배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이 맑았다.

공기 좋은 곳에서 욕심없이, 간섭없이, 자식 걱정없이 살고 있어 그럴 것이다.

처갓쪽이고, 등만 하나 넘으면 바깥양반 고향이기도 해서 농사를 많이 짓는 것도 아니고, 흑염소, 토끼, 닭, 오리등을

조금 키우고, 텃밭수준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산다.

그래도 양파, 고구마, 감자등은 다 먹을 수 없으니,친구들을 통해서 팔기도 하고, 친구들이 놀러가면 잡아 주는 것들도

돈계산은 되는 것이고, 흑염소 약탕도 부탁을 하면 만들어 주는 것이고, 이럭저럭 생활비는 되는 그런 생활이다.

자급 될 만큼의 논농사도 짓는다.

 

낚시터 3년 생활에서 안사람이 고생을 했었지만, 이젠 고향에서의 생활이고, 귀농처럼 살아가기에 부담이 되는 정도의

수입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텃밭수준의 농사를 하면서 공기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다.

남편이 술이 취한 때가 많으니, 운전이 필수가 되어 시골생활을 하면서 안사람인 친구가 운전면허증을 땄다.

퇴직 후의 생활이 그만하면 더 바랄것이 없을정도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