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가 처음생기고,
기차보다는 고속버스를 더 많이 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은 KTX 고속철도 없었던 때다.
그 시절은 수입소고기가 없던 시절이라 한우라 부르지 않고
소고기라 했을 뿐이고,
우리가 시장의 육수간 (정육점 )에서 사 먹어 왔다.
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시골에서
장날이라고 일반인들이 소고기를 살 수 없었고 소고기는 추석이나 설 명절을 앞두고 동네 기운 센 장정들이 경험 많은 어른 한 사람의 지시대로
갱변가에서 잡아서 몫으로
나누었다.
돼지고기는 부모님 환갑잔치나
결혼식이 있으면 새끼 돼지 한 마리 사다 키웠다
소는 풀을 먹기에 집집마다 소를 키웠지만 돼지는 곡식을 먹어야 해서 큰일을 앞두고 미리 키웠다.
그러니 잔치나 초상집에서 먹는 돼지고기 수육은 귀한 것이였다.
우리 집에서는 송이를 채취해서
조합 같은 곳에 넣는 집이었다.
추석 전에 소를 잡아 몫으로 받아 둔 것이 있을 때 송이도 넉넉하게
준비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 형제 사촌들이 모여서 석쇠에
소고기도 굽고 송이도 굽고 할 때
아이들도 주셨다.
그랬지 소고기로 불고기 양념고기를 하지는 않았다.
추석을 앞두고 술도 담아 놓았고.
나라가 잘 살아지면서,
소고기를 지금처럼 고기자체를 숯불에 굽지는 않았고 양념에
재여서 거붕이 등처럼 볼록하고 양념이 흘러내리는 골이 지고 흘러 내린 국물을 받게 된 불판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사는 딸도 보고 싶고 손주들도 보고 싶어셔서 1년에 딱 한번
불고기 양념에 재고 만두 속 만들어
보자기에 싸서 들고,
고속버스 타고 오셨다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면서 손수 조리해
우리 식구들을 먹게 해 주셨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가기 전 몇 년을 그리 하셨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가방에 넣지도
않고 다들 그냥 보따리에 싸서 들고 다녔다.
나는 어린 준서를 보내고는
방학이면 준서는 우리 집에 와 있었고 방학이 끝날즈음에 데리러 왔고 가는 차에 밑반찬 하고,
김치 두어 가지 담고 차에 실어
주었고, 가을에 과일이 맛나게
익은 철에 과일박스를 보내주었지만 그것도 준서가
4학년에 언어 연수로 외국으로 가고부터는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살림살이가 불고기로
하는 것보다 가족이 모이면 생고기를 바로 구워 먹는 것으로
변했고, 전골보다는 육수에 소고기와 채소 풍덩풍덩
담갔다 먹게 되었다.
뭐든 풍족한 세월이 되었다.
만두는 식품회사에서 만든 것이 차고 넘치고 나도 마트만두를 사서 먹는다.
엄마들이 더 이상 보따리 들고
딸네집 갈 필요가 없어졌다.
오늘 아침은 근대된장국을 끓이고 있다.
들깨가루를 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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