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타이프라이터 세대였다.
타이퍼라이터도 한글 자판이 두 가지 있었다.
그러다 통일자판이 있어지고 각종 공문서를 타이퍼라이터로 서식에 맞게 찍었다.
전통이라고 급한 소식은 전화로 오기도 했지만,
직접 작성한 공문서를 심부름하는 아이들이 상급부서에 가지고 가서 접수를 했고,
다시 할 공문서를 받아 오고,
큰아이가 고등학생이던 때, 둘째가 초등 3학년이던 때,
우리 도시 중앙도서관에서 컴퓨터 강습이 있다 해서 접수해서 배우러 갔었다.
도스란 것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실행시키고,
그저 하라는 대로 컴퓨터 한 대에 두 사람이 앉아서 배웠다.
그때 가니 한글은 자판은 통일되어 있었고, 다음기에는 16비트 컴퓨터가 들어온다고
다음 기에 한 번 더 배우라고 해서 그 때는 도스로 프로그램을 짜지 않아도 되었다.
그무렵 컴퓨터 학원이 생기고 고등학생들이 배우러 가고 할 때였다.
겨울방학 고등학생인 큰아이가 도서관에서 배웠고,
그 이듬해 여름방학에는 3학년인 둘째가 배웠다.
그렇게 배운 것으로 우리 아이들은 컴퓨터 학원을 가지 않고, 큰아이가 대학생이 되면서
컴퓨터를 샀고, 둘째도 컴퓨터란 것을 집에서 만지지 않았고, 나도 그랬다.
그러다가 핸드폰이 우리 아줌마들까지도 가지게 되고,
우정본부에서 무료로 도서관을 실습지로 하고 신청을 해서 배우러 갔다.
처음에는 폰 문자 보내고 받고부터 배우는데도 일주일에 한번 하는 강습시간을 두 번쯤
그러다가 블로그란 것을 개설할 것이라고, 자녀들에게 아이디란 것을 만들어 달라 해서 오라고 했다.
멀리 공부하러 간 둘째에게 아이디란 것을 만들어 달라 하고,
폰의 문자로 아이디가 왔고, 수업시간에 닉도 필요하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닉을 지어야 해서
산후조리 해서 보낸 아기 준서가 생각나서 - 이쁜 준서 -라 했고,
사돈께서 준서를 봐주셨는데 주말이면 준서엄마가 사돈댁으로 갔고,
5월 4일인가 일찍 퇴근하게 되어서 준서 안부 묻는다고 전화를 드리니 이제 아기 못 본다 하셨다고
전화가 왔다.
남편이 집에 없었는데 의논도 하지 않고, 망설임도 없이 가서 아기 물건 정리 해서 내일 오너라고,
아기 준서가 그때 첫돌을 지냈고, 두 돌 전이였다.
엄마 아빠가 가고 나니 안방에서 준서랑 자는데, 밤이 되면 나를 안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울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아기는 아토피가 있어 긁어서 상처가 생긴 것이 딱지 떨어진 곳의 허여스럼 한 피부에
긁어서 새로운 상처에 피부가 얼룩덜룩했고, 달리 방법도 없었고,
큰 주전자에 녹차를 끓이고 그 물에 한 꼬집의 소금을 넣고 그렇게 목욕을 하면서
비누는 겨드랑이와 살 접히는 부분과 머리 감기는 것만 사용했고
10차로 길 건너 가면 대학교가 2개가 있어서 나무가 많았다.
아기를 데리고 늘 나무밑으로 다니고 놀게 했더니 한 달 있다가 준서 엄마, 아빠가
왔을 때는 새로운 상처는 없었고, 올 때 있었던 상처는 많이 나아 있었다.
그때의 폰 카메라는 화소가 낮았는데도 준서의 사진을 찍고, 그날 놀았던 이야기를
적고 그렇게 준서엄마는 준서의 이야기를 매일매일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충청도에 사시는 어느 분께서 준서 이야기를 그동안 읽었다 하시면서
영지버섯이 아도피에는 좋다 하시면서 보내 주셨고,
준서가 5살 저그 엄마에게 갈 때까지 늘 보내 주셨고,
준서가 그날 그 날 놀았던 이야기라 기특한 준서의 말과 행동도 적혀 있으니
한학 공부도 많이 하셨던 분이신데 좋은 말씀도 많이 주셨고,
내 블로그에 블친들께서 그분의 말씀에 도취될 정도였다.
준서의 아토피를 낫게 해 주신 그 분은 지금은 블로그도 오래 전 접으셨고,
어찌 사시는지는 몰라도 고마우신 분이셨다.
물론 물질적으로 보상은 했지만 준서를 낫게 해 주신 계기를 주셨으니 정말로 감사한 맘이다.
나에게 블로그는 준서를 엄마와 떨어지게 데리고 있으니 엄마가 보게 하는
육아 일기를 적게 했고,
또 블로그로 내왕하는 블로그 친구들이 생기게 했다.
손자를 직접 데리고 돌보는 할미도, 손자가 자라고 있는 할미도, 자연스럽게 내왕이 되어서
우리들은 도치할머니( 고슴도치)라 부르면서 1차로 천안에서 만나서 1박을 했고,
두 번째도 천안 쪽에서 만나서 1박을 했고,
세 번째는 울산에서 만나서 1박을 했고,
그 후로는 세 사람이 1년에 1박 여행을 두 번을 했고,
그 후로는 나만 한 분의 부부와 함께 2박 3일의 일정도 했었다.
그러다가 또 다른 블로거 나까지 네 사람이 서울에서 만났고,
만남 후 한분이 카톡방을 만들어서 아직도 카톡방은 잘 운영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블로거 한 분이 저 세상으로 가셨다.
블로그를 좀 더 잘 되게 할 목적으로 1주일에 한 번의 밋션이 나오고,
그 밋션에 맞추어서 글을 작성하고 하는 변화기도 있었고,
그러다가 티스토리로 넘어오면서 달라진 글 쓰기에 적응을 못해서 많은 블로거들이 그만두었다.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쉬고 있었던 블로거가 다시 블로그 운영도 하게 된
티스토리는 전환기였다.
티스토리에 대한 내가 미루어 이해한 것과 블로그 친구들에게 물었던 것을
카테고리 정해서 내 블로그에 올리면 참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오블완챌린지란 것을 요즘하고 있는데,
블로그 글을 작심 3주 매일 글쓰기 도전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 사람들만 참여하게 해서
운영 중이다.
나에게는 블로그가 그렇다.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이니 우선 나를 돌아보게 하고,
오랫동안 해 왔으니 서로가 신뢰하는 블로거들과 친구가 되게 하고,
그렇게 특출하게 글을 문학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어도, 오랫동안 글쓰기를 했으니
완전한 문장을 쓸 수 있고,
내 글은 평균으로 이틀에 한 개는 적을 것이고, 블친들의 글은 10개의 글도 더 읽을 것이고,
댓글, 답글로 주고받아서 신뢰와 정이 생기게 하고,
늙을 일 밖에 없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맘을 가다듬게 하는 쉼터이다.
블로그 한지가 20여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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