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음식

어제의 저녁 식탁

이쁜준서 2020. 9. 23. 19:59

 

월요장에서 나물 거리로 여린 배추 뽑아 온 것을,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자경농은 어려도 청방이라 김치 담아도 된다 했고,

한 무데기 3,000원하는 것을 두 무데기 샀습니다.

청방이라 얼갈이 배추 여린 것과는 다르게 촉감이 포동포동 한 듯 했구요.

 

배추를 심은 밭은 오래 전 길에 들어 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설마하고 청방배추 씨앗을 뿌린 것인데,

추석 지나고 공사 시작한다고 다 뽑아라 했다 합니다.

얼갈이 배추는 물기가 많은데 청방이라 한뼘의 길이의 반 정도 되어도 다듬으니 포동포동 한 것이 촉감이 좋았습니다.

너무 어려서 속 고갱이와 그 중 여린 잎은 골라서 새래기 된장국을 끓였는데, 육수를 맛나게 내었더니

배추 국이라고 시원한 맛이 났습니다.

 

잎중에 큰 잎을 모아서 열무도 한 줌, 무도 굵은채로 섞었고, 양파 작은 1개고 곱게 채 썰어 넣고,

건고추를 불려서 사과, 배, 마늘과 함께 믹스기에 갈았고,

국물용 풀물은 또 북어, 표고버섯, 다시마로 육수를 내어서 끓였고,

하루 반나절을 현관 앞에 두었더니 잘 익어 국수를 말아 먹고, 밥을 말아 먹고 싶은 그런 물김치가 되었고,

 

아이들 야간 자습까지 하고 도시락 2개 가지고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자주 해 주었던 반찬입니다.

쇠고기 납작하게 썰고 우엉도  비슷한 크기로 썰어서 우엉 졸임을 해 주면 잘 먹었지요.

볼일 보고 오다 딸이 하는 복권 가게 앞 인도에 그녀의 친정 아버지가 시골 텃밭에서 기른 채소등을 파는 것이

가끔 나옵니다.

토종 우엉 굵은 뿌리가 섞인 것을 팔고 있어서 우엉 향이 많이 날것이라 또 두 무데기를 사 왔지요.

한우 양지와 함께 우엉 조림을 만들었지요.

토종 우엉이라 한참을 삶았더니 우엉이 연하게 되었고, 우엉조림을 참 오랫만에 했는데 예전 그 맛이였습니다.

 

건어물 상회에서 북어 껍질 튀긴 것을 팝니다.

옥상표 풋고추 따서 처음으로 북어 껍질 튀긴 것과 함께 멸치 풋고추 조림 하듯 했지요.

북어껍질이 질겨 져서 북어 껍질 튀긴 것은 그냥 상에 올려서 한개씩 다른 반찬과 함께 먹는 것이 낫다 했습니다.

 

여린청방으로 끓인 된장국,

여린청방으로 담근 물김치,

우엉 쇠고기 조림,

북어 껍질 풋고추 조림,

깻잎 심심하게 담은 장아지

 

저는 밥 한숟가락 남겨서 물김치에 말아 먹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그리 많이 먹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먹어야지 하고 뜬 밥도 남길 때가 있어서 먹는 것, 잠자는 것은 참 밉상인 사람입니다.

뒤돌아 보면 중학생 때가 제일 많이 먹고 맛나게 먹었던 것 같습니다.

십여리 길 걸어서 학교 갔다 온 저녁 밥상은 그리 맛이 있었습니다.

가마 밥솥에 찐 뚝배기 된장은 멸치 한마리 들어가지 않아도 짭조롬하게 된장을 풀수 밖에 없었지요.

식구들이 다 먹어야 하고 뚝배기는 어느 정도 크기가 정해져 있고,

보리밥에 상추 쌈과 가을에 솎음 채소로 담은 홍고추 넉넉하게 강가에 차돌 주워 온 것으로

갈아서 담은 물김치는 정말로 맛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보리밥에 따뜻한 된장을 넣어서 우선 비벼 먹고는, 상추 쌈도 나물도 먹었고,

맛나는 물김치가 있으면 먹다보면 밥이 식어지고 그 식어진 남겨 둔  밥 두어 숟가락으로 물김치에 말아 먹었지요.

외갓집에서 중학교를 다녔기에,

외삼촌 식사 하시다가 숟가락 멈추시고 저를 보시고는,

참 신나게 맛나게 먹어서 보기 좋다 하셨습니다.

 

중학생 때 이후로는 그렇게 맛나게 먹지 않았으니,

그 때 먹었던 짭조롬하고 부재료 들어 가지 않고, 매운 고추 썰어 넣은 된장이 그나마 맛이 있는데,

남편이 원하는 된장은 주재료 많이 넣고, 국도 아닌것이 된장 찌개도 아닌 그런 섬섬한 된장찌개라

제 입에는 맛이 없습니다.

 

어쩌다 물김치 맛나게 담아지면 그 국물에 밥 남겨 말아 먹는것이 제일 맛납니다.

 

2일만에 쑥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