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세상이 변해서.....

이쁜준서 2012. 4. 5. 08:15

준서할미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농촌에서 보냈는데도  어린 시절은 다 시골에서 보낸 듯 하다.

그 때는 산림을 지키는 사람들을 피해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때었다.

그것도 대대로 그리 했으니 산림은 황폐화 됨이 자꾸 진행을 하니, 나라에서 해마다 사방사업을 대대적으로 했다.

국민학교 고사리 손으로도 4월이면 산에 나무를 심으러 동원 되었고,

가을이면 아카시아 씨를 받아 학교에 내어야만 했다.

 

그시절부터도 나무는 전국적으로 계속해서 심어도 각 가정에 연료가 나무였기에 나무가 자라서 산을 푸르게 할

수 없고, 늘 나무는 심고, 몰래 몰래 나무를 했기에 산은 황폐했다.

고등학교 때는 도시에 있었는데도 4월이면 나무심기에 동원 되었고, 송충이를 잡으러도 동원되었다.

연탄이 나오고, 기름보일러가 나오고, 가스가 취사도 난방도, 하게 되면서 산에는 페목들이 널려 있기도 하다.

 

아침 햇살이 퍼지는 시간이라 스티로폼 상자에 햇살이 가득 내려 앉았다.

스티로폼 상자에 달래를 심어 놓았고,

달래야 워낙 월동이 되는 식물이라  월동을 하고는 새싹이 올라오고 이렇게 자랐습니다.

어제 고기 쌈에 넣으려고 조금 캐 내어서 왼쪽이 듬성듬성합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던 나뭇짐에는 이만 때 쯤이면 진달래를 꺽어 꽂아 와서는 집안의 아이들을 주기도 했고,

우리들은 봄이면 들로 들나물도 뜯고, 쑥도 캐고, 달래도 캤다.

아무 곳이나 발길 닿은 곳에서 캐 와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집 사랑방 앞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는데, 산에서 비비추를 캐와 심어 놓았었다.

그렇다고 자연 훼손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달래 가지를 꺾어 왔다고 자연훼손이라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진달래 가지를 꺽으면 그 이듬해 꽃이 더 많이 달린다고 알고 있었고.

 

우리들의 심성은 그렇게 자연 속의 꽃도 예쁘면 꺾어도 되었고, 진달래는 한웅큼 따서 먹어도 되었다.

산으로 마실 사람들이 점심을 준비해서는 보따리 크고 작은 것을 준비해서 산나물을 해 올 때는 머리에 한보따리 이고

왔어도 자연 훼손은 아니었고, 그 이듬해 산에 나물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사람도 그 때는 자연의 일부이기도 했다.

 

사람이 많아지고, 차를 가진 여유 있는 시간이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농촌이나 산촌에서 들의 일을 하고,

여유가 있을 때 동네 뒷산으로 나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차에 가득 사람이 타고 와서는 산으로 들어가

내년에도 나물이 올라 올 여유를 두지 않고,- 실상은 그렇게 할 줄도 모를것이고,

산을 삐대고, 나물은 손 가는대로 뿌리채 뽑아 버리고, 산의 나물 자원이 점점 없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산림자원채취를 하는 것도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들어가야 하게 되었고, 도시 사람들이 예전 생각만 하고

들어 갔다 현지인에게 낭패를 당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산에 들어가 채취를 많이 하고 적게 하고가 문제가 아니고, 단속반에 걸리면,벌금 이란다.

세상이 변해서 인심을 변하게 한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만 그래도 자연이 최소한이라도 보호가 되게 되었고.

 

이젠 산에 나무는 푸르다.

어쩌다 산불이 난 곳 말고는 산은 푸르다.

이젠 산림자원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맞고,

또 자격증 있는 분들이라도 들어 갈 수 있기에,도시민도 산나물을 사 먹을 수 있음도 다행이다.

물론 비닐하우스에 심어서 일찍 산나물이 나오기는 하는데, 제대로 된 향과 맛은 아니다.

준서할미는 해마다 나물 뜯으러 가지도 않으면서,

봄이면 맘으로는 날마다 날마다 산으로 나물 뜯고 고사리 꺾으러 나선다.

세상이 변해서 이젠 사람이 자연을 상처 내는 상대로 전락한 세상을 살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