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 입춘이 지났지만, 도시의 옥상에는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장독 유리뚜겅은 아침에는 안쪽으로 서리가 올라 붙은 듯 합니다.
아주 추운날은 종일 그렇습니다.
지금은 준서할미이지만,
작은 가시내는 3월이면 동네 가스내들과 논둑, 밭둑으로 돌면서 봄나물도 캐고 소풀도 캡니다.
대나무로 엮은 잿간에 재 끌어 낼 때에도 쓰는 앞쪽은 낮고, 뒷쪽은 높은 소쿠리를 들고 들로 나갑니다.
소죽을 끓일 때 넣어 줄려고 캐는 소풀은 호미로 캐 담아서 올 때는 개울가에서 소쿠리채로 흔들흔들 흙을 씻어서 가져 오지요.
소풀을 한번 캐러 나가면 쉬는 날 없이 늘 나갑니다.
아마도 한 일주일여가 지나면서 풀들이 자라서 더 많은 양을 캐 오지요.
나중에는 마른 것을 넣지 않아도 파란 풀만으로 쇠죽을 끓일 수 있지요.
그 때 그 시절에는 주방세제가 없던 시절이라 설겆이 한 물도 맹물보다는 나아서 뜨물, 설겆이 물등을 모아 두었다
쇠죽 솥에 붓고, 끓이다 물이 끓으면 어린 풀 캐어 온것을 넣고, 쌀겨 모아 두었던 것을 넣어 쇠죽을 끓여 주었지요.
그러면 그 작은 가시내는 누가 책임을 지운 것도 아닌데도, 매일 매일 풀을 뜯으러 갑니다.
집 근처 들로 다니면서 캐기에 가득 차면 집에 갖다 두고 또 나가는데,
아기를 업고서는 힘이 드니, 도적질을 하듯이 살금살금 들어 와서 풀을 살며시 비우고 나갔지요.
사립문 밖을 나가는데, 얼핏 인기척을 듣고는 부르는 소리가 나면 냅다 뛰면 되고, 집 마당 안에서 부르는 소리에는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업고 나가야 했습니다.
아기를 업고 왜 쇠풀을 캤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봄바람이 그래도 차거웠습니다.
봄바람은 보리밭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은 바람의 실체를 보는 듯 하지요.
보리밭을 지나가면서 봄의 한자락을 놓고 가고, 그 한자락의 봄이 논둑으로 밭둑으로 보내어서 봄이 풀들이 자라는 듯도 했지요.
한자락 봄을 받았던 보리밭은 더 빨리 자랐습니다.
그 작은 가시내가 이젠 준서할미가 되었습니다.
내 고향 들판도 변했습니다.
이젠 들에서 봄을 맞는 것이 아니고, 준서할미는 방에서 생각으로 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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