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학교폭력 이젠 그만

이쁜준서 2012. 2. 6. 11:18

학교폭력 이젠 그만

 

준서할미가 자라온 시절에는 보리밥도, 나물죽도 배부르게 먹지 못한 가정도 많았던 나라 경제였다.

그 때는 도시에서도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가정이 많았고, 그 때는 기차역사 마당에는 지겟군이 한무리 모여 있다가

역사 밖으로 기차에서 내려 나오는 사람들이 좀 무겁다 싶은 짐을 들고 나오면 그 짐을 받아 지게에 지고 갇다 주는

일을 지겟군들 사이에 경쟁으로 뛰어가서 맡는 정경이었다.

 

말하자면 일자리가 그리 넉넉한 것이 아니어서 부산에 그 때 큰 회사는 방직공장이 있었고, 신발공장이 있었고,

럭키치약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었지 지금처럼 그리 큰 공장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였다.

그러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 중에는 지겟군도 있었지만, 집에서 고구마를 삶고, 김밥을 말고, 밀가루에 막걸리, 소다로 발효한

빵을 만들어 양철로 만든 다라이에 담거나, 나무로 만든 전이 높지 않아 고구마, 김밥이 보이게 얹어 팔러 나갔고,

당면부스러기를 삶아 양념장을 끼 얹어 주 값사고 배 부른 음식도 한 다라이 팔려 나갔다.

떡, 묵, 여름이면 콩국, 감주등을 만들어 시장길이나 사람이 래왕이 많은 곳에 앉아 팔아서 저녁이면 종이봉투에 쌀 한됫박을

새끼를 끼어 연탄집 앞에 쭉 놓아 둔 연탄 한장을 사서는 비탈진 곳의 하꼬방 집으로 갔어도,

그래도 팔다 남은 음식도 먹고, 하다 못해 죽이라도 끓여 먹었기에, 그래도 시골 빈민들보다는 배는 덜 고팠는지도 모른다.

 

나라 전체가 그런 경제적 어려움이라,

[이층집]이라 불리우면 그 집은 실내로 이층으로 된 집이였고, 간혹 피아노 소리도 들리고, 아주 부잣집이 하나나 둘이였지

다들 그만그만한 사람이어서 아무리 못살아도 학교에 가서 -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점심밥을 가져 오지 못한 아이가 있으면 나누어서 먹었고, 또 혹간은 담임선생님께서 도시락 하나를 더 사오셔서 주시기도 했었다.

그 세대들이 준서할미 세대들이고, 또 우리나라가 공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10살정도가 되면 남의 집 아기 봐 주러 나가기도 했고,

초등학교 졸업을 하거나 그 정도도 나이가 되면 도시의 공장이나 옷을 만드는 곳의 재봉사로 취직해서 돈을 벌어

남자 형제 학비도 대고, 고향의 부모님들께 소를 사드리고, 몇년이 지나면 전답도 사드린 세대가 준서할미 세대이다.

그렇게 부모, 형제를 생각하고 자란 사람들이 어찌 - 왕따-를 시킬 수 있었을까?

 

준서에미가 초등학생이 되고서 일본에서는 [왕따]가 큰 문제라는 둥 하더니 아주 간혹 [왕따]가 생기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첫째는 경제적으로 나아진 사회에서 가정형편이 좀 어려운 아이들이 시샘의 대상이 되는 그런 아이들을 괴롭혔지 요즘 같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였다.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고, 이건 나라가 망하는 길로 들어 서는 것이다.

오늘아침 국무총리의 담화문 -학교 폭력 이젠그만-이란 주제로 대책을 발표 했다.

이런저런 대책도 많았고, 아이들 인성교육에 중점을 주겠다고 하고, 대입전형의 입학사정관 제도에서도 대처하겠다 했다.

강한 대책, 교사들에게 거는 기대도 이야기 했다.

 

준서할미가 준서를 돌보아 오면서 느낀 것은

문제 아이들에게는 문제 부모가 있는 것이고, 아이들은 일단 즈그말을 어른이 귀담아 들어 주면, - 달리 표현하면 저를 잘 이해 해 주면

즈그들도 어른말을 들어 준다는 것이다.

준서가 이번 겨울방학에 한 말 중에는

아빠, 엄마, 할머니도 내 맘대로는 않되고, 딱 한사람 외할아버지만 내 맘대로 되는데,

내 맘을 제일 잘 이해 해 주는 사람은 할머니(준서할미)라 했다.

내 맘대로 되는 사람이 있고, 나를 제일 잘 이해 해 주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은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젊은 선생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잘 다룬다고, 그 잘 다루는 것 중에는 상담을 잘 한다고 한다 했다.

물었더니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이들 수업에 들어가면 정말로 야단을 치지 않을 수 없게 행동을 하는데, 들어 가시는 선생님들 대다수가 야단을 치니

자기까지 칠 수 없어 야단을 치지 않으니 어느 시기가 되면 상담도 하러 오고, 또 선생이 부탁하는 것을 들어 준다고  했다.

 

학교 폭력을 이렇게까지 하고도 못 잡는다면 앞으로는 우리나라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없게 된다.

우리 국민 모두가 어찌보면 학부형이다.

큰테두리로 생각하면 준서할미도 준서의 학부형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부산의 - 인디고 서원- 처럼 책을 읽고(인문학 서적) 자기의 사고의 틀을 넓혀 가고, 같은 또래들과 책을 읽고 대화를 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곳도 많이 생기기를 바라게 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폭력을 당하는 쪽도, 그렇게 하는 쪽도 다 우리들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을 막아 주어야 하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는 더 다수이고, 그 아이들도 청소년기만 잘 보내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기둥들이 될 우리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잘 선도해서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로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어른마다 다 같은 맘으로, 구체적으로 나서지 못해도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옛말처럼 이번 기회가 바로 잡아지기를 정말로 간절하게 바라기를 또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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