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자식 월급

이쁜준서 2011. 11. 21. 11:42

 

 

비록 중국산 참깨이지만, 30Kg 한포를 사서 셋집에 나누어서 깨를 들고 참기름을 짜와서 먹는다.

들깨야 국산을 사 들기름을 짜 먹지만, 참깨는 참기름까지 짜기에는 너무 고가이라 일년에 두되정도이면 깨소금을 하기에 충분하다.

얼마전 참기름을 짜러 방앗간에 갔다.

 

우리가 갔을 때 들깨 기피하러 아주머니 한분이 와 있었고, 그 아주머니와는 오래 된 친한 사이 같았다.

들깨 기피하러 오신 분은 딸이 둘인데 딸들은  결혼을 해 큰 딸은 차타고 한시간 안의 거리에 있고, 작은 딸은 서울에 살고 있다 한다.

아들이 설흔을 넘었는데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는데, 늘 자정을 넘어 오기에 아들이 오기까지 기다린다고 잠을 설친다 했다.

왜 그냥 주무시지요?

젊은 사람들 낮시간은 정말로 열심히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니 자기만의 시간은 밤시간이니 친구들과 술 한잔도 할터이고,

공부도 할 것이고....

또, 친구들과 어울리기라도 해야 낮동안 스트레스도 풀기도 할텐데요라 했더니

자식이 차를 가지고 아침에 나갔는데, 술도 먹는 아이인데, 어찌 잠을 잘 수가 있는가요?라 하면서

기다려 보아야 왜 기다리요? 하고는 지 방으로 가버린다고 정 없다고 했다.

그래도 월급은 나를 주니 내가 관리를 한다고.

 

방앗간 아주머니는 자식들 어려서부터 방앗간을 해 왔는데, 아이들 아침밥 먹이지 않고 보내 본적도 없고,

그리 그리 말썽 없이 잘 큰 남매를 결혼을 시켰는데,

아들 결혼식 때 혼수도 갖가지를, 음식도 갖가지를 다 해 화물차에 한가득 보냈는데,

음식 갖고 간 아들이 그날 밤 늦게야 들어 왔는데, 빈손으로 술이 취해였다고 했다.

친척들은 다 모였고, 다리를 펴고 대성통곡을 하고 난리를 쳤었는데, 그리 그리 결혼식을 해 살고 있는 아들이

월급을 물어니 대답을 하지 않더라고 섭섭해 했다.

결혼전에는 월급을 엄마가 관리를 했는데, 내가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고 했다.

장모는 사위 월급을 알아도 친엄마는 아들 월급을 모르는 세상이라고 탄식을 했다.

 

준서할미는 준서에미가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한달에 두어번을 왔었지만, 월급을 묻지도 않았고,

돈도 준서에미가 관리를 했다.

지금도 준서네 월급은 모른다.

결혼하지 않은 준서이모의 월급도 모른다.

 

블벗님이신 민서할머니 오늘 올리신 글에 - 어르신- 이란 단어가 있어 생각나서 쓰는 글이다.

자식이라도 자기들 생활을 부모가 다 살피 살피 알고 있음은 부담이 되는 세월이다.

어떤이가  자기 친구네는 사위가 그렇게 장모에게 잘한다고 부러워 했다.

준서할미 말이- 아마도 장모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니 그렇지 즈그 엄마한테도 그렇게 못하는데,

장모에게 그렇게 잘한다니라 했더니

아파트를 살 때 큰 도움을 주었고, 이런 저런 자잘한 살림에도 많이 사다 준다고 했다.

그것이 정답인 세월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사 준서할미가 현역으로 살고 있지만,

나도 언젠가 기력이 다해서 내 살림도 못할 지경이 되면, 툴툴 맘 털수 있기에 노력을 할 것이다.

한 집에 사는 40대 한 가장은 준서할미를 어르신이라 부른다.

아내가 하는 일이 오후부터 시작되기에, 아이들 밥도 챙기기도 하고, 어제처럼 아이들 엄마가 어디를 갔는지

아이들 교복과 자기 와이샤스를 빨아서 옥상에 널어 놓고 내려가기도 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건축설계사이시다.

 

옷걸이에 걸어서 그냥 빨래 집게 하나 꾹 해 놓고 내려가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옷걸이가 집게에서 빠지게도 되고

옷이 바람에 흘려내려 옷만 옥상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준서할미 눈에 뜨이면 빨래집게 두개를 사용해서 옷걸이 단단하게 해 두고 옷도 윗 단추 하나를 채워 놓는다.

 

예전 한옥에서 살 때는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적에는 세 놓은 방의 사람들이 설명절에 고향으로 가면 연탄불이 꺼진다.

연찬 한장이라도 아낄려고 연탄불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꺼지게 두고 고향으로 가버린다.

오는 날을 거의 아니, 오는 날에 우리 연탄불 불 붙여서 미리 연탄아궁이에 넣어 놓으면,

방에 들어서면 어린 아이들과 춥지 않으니 참으로 좋아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주위를 지금처럼 작은 일이라도 보살피는 그런 맘으로 살고 싶다.

이 세상은 내 자식에게도 부담이 되면 않되는 세상이 되었다.

일단 맞벌이를 하니 즈그덜 살림하면서 자식 키우면서 살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어르신이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이 세상은 어르신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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