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신발을 기워서 신었던 세월......

이쁜준서 2011. 9. 19. 06:30

준서할미가 등산화를 처음으로 산것이 1995년도 였고, 등산복은 산악회에서 회원으로 가입을 하면 등산점퍼와 조끼를 주었지만,

등산복 티샤스나 바지는 가입한 그 이듬해에 사게 되었다.

산악회 가입하기 전에도 친구들이랑 , 준서외할아버지랑 산을 다니긴 했어도, 등산화는 무거울 듯 해서 운동화를 신고 다녀었는데,

좀 험한 산을 가게 되니 등산화가 필요하게 되어 등산화를 사게 되었던 거다.

 

 

처음보다는 두번째 등산화를 살 때는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사게 되었고, 세번째는 준서외할아버지가 사 주어서 더 좋은 것으로 샀다.

4년전 산에서 무릎을 다치고는 산행은 할 수 없었고, 산이 아주 가고 싶으면, 야산을 일년에 서너번 갈 때만 신으니 아직도 멀쩡하다.

 

 필리핀 대통령이 하야를 하게 되고, 한 때 세상에 회자 되던 이멜다 여사의 그 많은 구두가 세상을 놀라게 했었는데,

이멜다 여사야 일국의 독재자의 영부인 자리이기나 했지만,

지금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라면 에멜다를 능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일반인이라도 구두메니아라면 그 정도는 아니라도 대단히 많은 신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권력세상, 돈 세상이 되었는데, 한가지 더 추가 된 것이 대중의 인기가 세상의 척도인듯이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젊지도 않은 준서할미 신발을 대충 헤아려 보니

등산화 1, 트레킹화 1, 운동화 3, 방한화1, 여름샌덜2, 춘추용 편한신발2, 정장 구두 2, 정장용 단화 1,장화2,

대충 꼽아 보아도 15 켤레가 넘는다.

그런데 대다수가 준서할미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그리고 등산화, 트레킹화, 운동화의 가격은 참으로 고가이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시골에서 초등학생 시절에는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중학생이 되고 베신이라는 천으로 만든 요즈음 초등학생 실내화 모양과 비슷한 검은색이나

흰색의 천으로 만든 운동화를 신었지만,

참으로 잘 떨어지기에 기워서 신고 다니는 것은 예사였다.

떨어지고,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비만 오면 물이 올라 와도 신발 한켤레로 견디다,

정말로 못 신게 되었을 때야만,

신발을 다시 사 주시면 새로 신은 그 날 하루는 새 신발만 내려다 보고 걸었지 싶다.

 

 

물론 양말도 잘 떨어져서 초등학생도 제 양말은 호롱불 밑에서 기워서 신었고,

그 양말이란 것도 날씨가 추워져서 발이 시릴 때가 되어서야 신었다.

 

준서할미 일본 원전이 폭발하고 나니

우리가 전기도 펑펑, 물도 펑펑, 참으로 너무 편하게 살고 있다 싶어진다.

준서할미 세대가 어릴적과, 새댁시절까지만 해도 

그 이전 우리 엄니 세대분들은 집안에 샘이 있는 집도 있고, 샘이 마을에 있어 공동으로 그 샘을 이용했으니,

요즘 수도꼭지 틀면 물이 펑펑 나오는 듯이 물을 펑펑 쓸수는 없었다.

 

 

먹고, 세수하고, 머리 감고, 채소 씻는 일에만 사용 했었는데도,

어른들께서는 물을 아껴 쓰라고 이 승에서 쓴 물을 저승에 가면 다 먹어야 하니,

그 때 생각해서 물 아껴쓰라고 우리들을 가르치셨다.

늘 우리는 절제하고, 아끼고, 집안 일 도우고, 동생들 거두고 산 세대인것이다.

그런 우리세대들도 겁도 없이 신발장에 신발을 수두룩하게 넣어 놓고 산다.

더 아낄 수 있는 것이 신발만이 겠는가? 싶어서......

 

 

 

 

 

 

 

 

 

 

신고 있는 신발이 떨어지기 전에 마트 행사장에서 맘에 드는 여벌 운동화를 준비 해 두는데,

오늘 사온 것은 여벌 운동화이다.

여벌 운동화를 사고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니, 이럴 때는  선 세대인  우리 엄니 세대분들 사고의 틀에서 벗어 나지 못한다.

 

 

 

 

 

 

그래도

목화 솜으로 무명베를 짜서 이불깃을 붉게, 검게 염색을 해서 깃으로 하고, 집에서 목화 농사 지은 솜으로 이불 솜을 하고,

이불 호청도 그 올 굵은 무병베로 한 이불 하나로,

까는 자리는 없고, 덮는 이불 하나에 발만 이렇게 저렇게 넣고, 자던 그 시절이 그립다.

비록 밥도 배 부르게 먹지 못하고, 호롱불의 석유도 아껴야 한다고, 밤에 불 켜 놓고

숙제를 하는데도 불 빨리 끄라던 그 시절로 가고 싶다.

그 시절에는 준서할미는 어린 아이였고, 젊은 엄니도 계시고,

실개천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흘렀다.

                                       화분 세개에서 나온 목화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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