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준서할미가 뜨개질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준서를 낳아 조리원에 있던 것을 찾아 가 처음 신생아 아기를 보았던 것은 신비롭고, 신기했던 것이었고,
제일 기뻤던 것은 준서엄마가 초등학교 입학한 날이였지 싶다.
꽃샘 추위로 제법 날도 추었던 날 입학식이었는데, 때 되면 가는 그 첫아이 입학식이 어찌나 좋았던지.....
그 입학식에 맞추어 따뜻하라고 밝은 홍색실로 가슴에는 병아리를 노란색으로 배색으로 무늬를 넣고 그런 조끼를 입학식 전에
뜨개질로 만들었다.
따로 배운 것은 없어서도, 자라면서 고무뜨기, 겉뜨기, 안뜨기는 초등학교 때 장난으로 목도리라고 실도 없었던 시절 가느다랗게
장난으로 대바늘로 실을 걸어 보았던 것이 있었으니까.
그 후 쉐타도 뜨개질로 만들었고, 작은 아이가 네살 때인가? 친정쪽 잔치가 서울에서 있었고,
모이는 친정 친척중에는 시골에서 오시는 분들은 그래도 부농이셨고, 서울쪽 친척들은 아주 잘 사시는 댁들도 몇집 있었고,
부산의 친척들도 아이들 대학공부 시킬 여력이 있는 그런 분들이 제법하게 섞이는 그런 잔치였다.
그 당시 시뉘, 시동생이 고등학생이었고, 그 동생들 중학생 때부터 준서외할아버지는 학부형이었고, 작은 월급으로 뭣이던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도시 살림은 늘 물밑처럼 환~이 보이는 그런 살림살이였다.
네살 아이 번듯하게 입혀 갈 옷이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모사는 고가이고, 화학사인 그 때 솔사란 신축성도 모사와는 떨어지고, 따뜻하기도 떨어지는,
털실을 사서 큰아이 옷도, 작은 아이 조끼도 쉐타도 뜨 본것이 있어,
책을 보고, 책의 것은 더 큰 아이 옷이라 적당하게 줄여서 코를 잡아 뜨개질을 했다.
겨드랑까지는 뒷판에 앞판 두장을 따로 떠 붙이고는 겨드랑 윗쪽은 3가지 색으로 배색을 넣어 앞판 뒤판이 따로 없이 이어서 뜨서는
그래서 마무리 하는 가디건을 뜨입혀 서울잔치를 갔었다.
이웃의 양장점 하는 친구가 안까지 넣어 주어 따뜻하기도 해 겉옷으로 방한복이 되었다.
준서에미는 초등1학년 겨울방학 무렵이었나? 번듯한 옷이 있었고. 그 때 그 옷이 준서할미가 제법한 뜨개질 중 제일 잘 된 옷이었다.
여러가지 무늬를 책을 보고, 코를 잡고 그렇게 응용하기도 했는데, 이젠 아무것도 모르겟다.
책을 보고 한 무늬 중 제일 신이 났던 것은 공작무늬라고 구멍을 내어 가면서 짜는 것이였고, 대나무 무늬로는 남자 어른 조끼에
응용했었다.
그 시절에도 아주 아주 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코트도, 한복도 뜨입었다.
그런 대작은 한번도 한 적이 없고,
시어머님, 친정어머니, 준서할미 겨울 가디건을 담담사를 넣고,뜨개질 한 옷에 안까지 넣고 한 것은 김장을 담거나, 아주아주 추운날
제사장 보러 갈 때는 옷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았었다.
우선은 눈이 침침하고, 어깨도 많이 아퍼서 준서할미 겨울 가디건을 끝으로, 손을 놓은 것인데, 어찌 그리 딱 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책을 보아도 그 기호를 볼 줄 모를 듯 한데, 준서가 초등학생이 되니 하나 해 주고 싶어 맘이 들썩들썩 한다.
민서할머니께서 분홍실을 사 예비초등학생인 손녀딸 망또 비슷한 윗도리 뜨개질 시작 하셨다 하니, 준서할미도 따라쟁이 해볼 생각이다.
뜨개질 옷은 실제 입어 보면 아주 가볍고 따뜻하기도 하지만, 뜨개질 하면서의 입혀 줄 사람을 생각하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뜨개질을 하는 것이라 따뜻할 수 밖에 없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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