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할미에게는 아직도 부모님대의 어른들이 몇분 계십니다.
시어머님,
친정으로는 고향땅에 살고 계신 고모님, 숙모님, 서울과 수도권에 계신 백모님, 숙모님
외가쪽으로는 이모님 내외분, 큰외숙모님, 작은외삼촌내외분,
살다보니 찾아 가지지가 못해서 전화인사도 드리지 못하는 분도 계시고,
날씨가 몹씨 춥거나, 더우면 , 또 명절이나 신년에 인사 전화늘 꼭드리는 분도 계십니다.
그 중 친정이모님은 지식도 깊으시고, 지혜도 있으시고 덕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모님하고는 간혹 아주 간혹 전화로 안부인사가 아닌 전화로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올 신년들어 일흔여섯이신 분이십니다.
저가 글 제목을 프로와 아마추어라고 함축해서 달았지만, 실상 나눈 이야기 속에서는 직접으로 우리가 사용한
단어는 그 단어는 없었습니다.
이제 마흔에 가까운 나이의 결혼전의 이모님 시댁 조카가 있다 하셨습니다.
대학을 갈 때 경영학과에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모자라
인도네시아어과에 입학을 했더라 합니다.
그랬다가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어과를 졸업하지 않고, 중퇴를 하고
인도네시아로 가 그곳에서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하고 졸업할 즈음에
우리나라 기업이 그곳에 큰 공장을 차렸고,
현지에서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한 그 조카는 때 맞추어서, 그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 조카는 학교 다닐 때부터 사교적이었고,
키타를 치고 사람들을 흥겹게 할 수 있고, 부모에게도 착한 아들이었다 합니다.
그런 밝고 대인관계가 좋은 그 사람은 진취적인 성격으로 그 기업에서 승승장구해서
지금은 그 공장에서 위에서 두번째 자리까지 올라 갔다 합니다.
경영을 전공하지 않았던 그는 경영을 알아야 해서 혼자 경영공부도 해서
현장의 노하우가 쌓인 그가 하는 공부는 바로 바로 활용하는 지식이 되어 이젠 경영도 많이 아는 사람이 되었다 했습니다.
얼마전 결혼 날 잡았다 하면서 귀국한 김에 인사 와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모님에게는 30대 후반이 되는 아들이 있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학교교사를 하셨고, 집안일을 도우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모님은 아이들한테 공부하라는 말도 하시지 않고 길렀다 하셨습니다.
그 아들이 서울대를 갈 정도의 성적은 아니였고, 서울의 대학을 갈려 했다면 보내었을텐데
그냥 살고 있는 지방대를 가겠다 했고, 또 그냥 지방대를 갔었습니다.
대학생활을 그럭저럭 하다가는 졸업반에서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래서 석사, 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은 자기 분야에서는 아직은 한국최고의 자리까지 있고,
지금도 열심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팀을 이루어 진행하는 사람입니다.
친정어머니 초상에서 그 이종동생을 만났습니다.
준서할미와는 나이차가 많아서 교류관계가 없었고, 준서할미가 결혼을 한 때에
초등학생이었던 나이차였지요.
그 동생이 빈소에 인사를 드리고 난 시간에 손님들이 들이 닥쳐서 아주 분주했습니다.
그러니 먹던 밥을 후딱 먹고는 윗도리를 벗고는 음식을 갖다 나르고, 먹었던 상의 빈그릇을 치워오고
음식을 담는 곳에서는 준서할미와 올캐 둘이서만 있으니
그 동생이 우리들이 미처 담아 놓지 못할 때는 기다리고 서 있게 되었지요.
그러니 돼지고기 수육상자를 달라해서는 접시에 쭉 담아 놓고
그러니 올캐와 저는 담기만 하고 그 동생이 갖다 나르고 치우고를 했는데,
여자도 아니고, 직장에서 나름 인정하는 자리에 있는 동생이
윗도리를 벗어 놓고 그렇게 일하는 모습에 놀랬습니다.
그 동생의 승승장구는 그 후 몇년동안 계속된 것이였고,
어머니인 우리 이모님께도 참으로 곰살맞은 정을 내는 아들입니다.
그의 성공은 좋은 성격과
정말로 열심히 하는
대학생활 할 때에 박사과정에서의 공부보다 훨씬 더 열심히 새롭게 새롭게
혼신의 힘을 다해 진행형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겁니다.
준서에미가 그럽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준서에미가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바에 느낀것으로
다 성격이 좋더라 하는 것입니다.
성격 좋은 학생이 공부에도 덜 스트레스 받고 공부를 하기에 대학가는 좋은 성적의 공부도 한다 했습니다.
긍정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하는 것이지요.
준서에미는 맡은 일이 어쩌다보니 아주 시간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일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종일반에서 준서를 데리고 다시 직장으로 가
저녁을 먹고는 일을 하고 준서는 옆에서 따로 놀기도 하고
어린 준서를 데리고 늘 야근을 할 수 업으니 집으로 일거리를 가지고 와
때때로 밤을 새기도 합니다.
아는것이 바탕이 되어 다시 더 알아지고,
직장인이니 직장에서 필요한 일은 개인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니
최대한의 시간을 일에 투자를 합니다.
준서할미가 생각하는 것은
학생 때 지금 일하듯이 공부는 하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한 젊은이는
그 때 성적이 더 좋아 경영학과를 갔다면 대기업에 입사해서 그만그만한 동료들과 어깨를 겨누고 살고 있지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하는 지금의 자리까지 갔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인이 이야기 한다 합니다.
이종동생의 경우는
공부에 재미를 느껴 석사, 박사 공부를 했지만,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그 동생은 정말로 열심히 새롭게 연구하는 공부를 했기에
외국의 유수한 대학을 나온 박사 인재들이 있는 곳에서 선두에 서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공부는 열심히 할 수도 있고, 나태할 수도 있는 자기자신의 마음대로라면
직장에서는 자기의 자리가 있어 책임에 합당한 공부를 늘 새롭게 새롭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준서에미가
낮시간 수업을 다 하고 일과 후 시간을 내어
또 맡은일을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신이 책임으로 맡은 것의 결과물이 학생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고
자기학교에 대표 되는 것이 되는 것이기에
해도, 않해도 되는 일이 아닌
책임인것에서 새롭게 연구하고 연구하는 것일 겁니다.
제 주변에 아직도 공부하는 청소년, 대학생인 조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도 정말로 열심히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더니
우리 이모님은 그것은 네 욕심이다.
자라는 세대는 착하게만 살아주어도 그것이면 족하다.
그 다음 대학에 들어가서의 생활부터는 지들이 하기에 따라 지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고,
또 우연찮은 기회도 따라 주어야 하는 것이다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동의를 하면서도
능력이 되는 조카가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는것에 애 탑니다.
'샘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다지기...... (0) | 2011.01.29 |
---|---|
등 따시고 배 부른 사람이 많아야...... (0) | 2011.01.27 |
대구 궁산 1월의 모습 (0) | 2011.01.19 |
구정 장을 보면서...... (0) | 2011.01.17 |
줄서기...... (0) | 2011.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