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예전의 김장...

이쁜준서 2008. 12. 17. 05:10

소규모의 농산물 공판장이 시내에도 몇군데 된다.

대구에서 제일 큰 농산물 공판장이 외곽지에 새로 들어 섰던 것이 10년이 넘었지 싶은데, 그 간에 그곳으로도 공동주택과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새 해에는 다시 옮겨 갈 예정이라 했다.

시 외곽으로 옮겨 가기전에는 대구 서부 쪽에는,팔달시장이란 곳과 원대시장이란 곳에 과채류 도매상들이 있어,

소매 장사꾼들도 물건 떼러 오고,농사지은 분들이 소구르마에 김장채소를 싣고 팔러 오기도 했었다.

지금은 원대시장 쪽은 농산물 도매시장 기능이 없어지고, 팔달시장은 아직도 시내에서 가깝고 식당을 운영하는 실소비자가

이용하는 농산물 도매시장이다.

 

우리가 살던 곳과 원대시장이 버스로 서너정거장 되었기에, 마늘철이면 마늘을 사러, 김장철이면 배추, 무를 사러

새댁 때 시어머님과 갔었다.

그 때는 근거리에 짐을 리어카로 운반했었기에 시장에는 리어카꾼들이 대기되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때의 배추는 지금처럼 그리 큰것이 없었다.

지금도 청방이라는 품종을 말은 하지만, 그 때의 청방이라 불렀던 배추와는 다르다.

꼬소하고, 달착하고, 적당한 크기의 청방배추를 100포기 정도 사서는 오르막에는 밀어주고, 내리막에는 같이 붙잡아 주면서,

큰길을 지나 골목길을 돌아 집 마당까지 배달을 하는 것이였다.

그 시절에는 수도 사정이 좋지 않아 밤에만 물이 나왔기에 집집마다 세멘트로 만든 수조가 있었다.

물도, 소금도 아껴야 했던 시절이라, 그 세멘트 수조에 배추 간을 쳤다.

그리고는 이틀밤을 재워 새벽에 씻는다.

그 때는 동파방지 수도관이 없었던 시절이라 수도꼭지는 얼었고, 미지근하게 데운 물을 수도꼭지에 부었고, 그래도 않되면 수도바닥에

불을 놓기도 했었다.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었던 시절이라 김장을 추울 때 했다.

어른들 말씀에 손이 문고리에 떠억 붙어야 할 정도의 추위에, 동지 전 어느날에 김치를 담구면 된다 했었다.

그러니 늦게 먹을 김장독에는 김치를 한켜 넣고, 천일염을 뿌려 아주 짭게 했었는데, 그 짠것도 구정을 쇠고는 짠 맛이 많이 감해졌다.

 

그 때의 김치는 멸치젖갈을 넣은 것과 찹쌀풀에 양념을 버무린 것의 짠지 두가지와 동치미와 백김치였다.

요즘처럼 여러가지의 부재료도 넣지 않았던 깔금한 맛과 시원 맛이 어우린 그런 맛이였다.

 

100여 포기씩이나 하는 김장은 시어머님 친구분들이 오셔서 도와 주셨다.

점심 때엔 준서할미는 하얀 쌀밥 한솥을 연탄불에 하고, 된장만 끓여 내면 방금 양념한 김치와 하하, 호호까지 합쳐

정겨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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