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엄한 할아버지....

이쁜준서 2008. 9. 21. 09:59

어젠 우리 집안에 맏집인 준서외할아버지 종형댁을 시어머님을 모시고 다녀 왔다.

시어머님과는 조카라고 해도 다섯살 차이, 질부와는 10살 차이밖에 나시질 않아, 살아온 세월에 쌓인

정이, 친구분들과 같기도 한 그런 사이시다.

그 분들이 어울리시는 것을 보면 참 정겨우시다.

 

그 댁 시숙님은 자식들에게 엄하셨다.

큰 아들이 군에가 강원도에서 근무를 했는데, 손수 차를 몰고 신임병시절에는 몇번 면회를 가

아들과 함께 여관방에서 지내시기도 했다.

요즘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큰 아들이 너무나 감격을 했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면회 올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면서.

군대에 가기전 최전방으로 가 고생을 해야한다고 늘 그랬었고, 아버지 말처럼 정말 최전방에서 근무를 했다.

 

아들 둘을 결혼시켜, 손주 남매를 낳기까지 데리고 계시다 살림을 내었다.

방학때면 손주, 손녀들을 데리고 계신다. 그러니시니 반대방향에 있는 손주들 학원에 데려다 주고

다시 데려오고가 만만하지 않은 일이고, 할아버지와 공부하는 시간이야 있지만, 넷이서 뛰고 싸우고

하기에 집전체가 난장판이 되고, 어느 때는 잡기 놀이를 하다 누워 있는 할머니를 밟아 갈비뼈에 금이

간 적도 있다.

 

가공음식을 자주 먹던 아이들도, 전혀 그런 음식이 허용되지 않는 할아버지댁의 음식을 먹고,

난장판이 되었던 방도 큰아이들이 치우면 둘째 아기들도 고사리 손으로 오빠들이 하라고 하니

치우는 것을 거들게 되고 그랬다.

지금은 일곱살인 손녀을 살림을 나가 세살 때부터 며느리가 일을 하게 되어 맡아 돌보신다.

할머니가 없으면 할아버지와는 있지 않아 늘 데리고 다녔던 까탈스럽던 아기가 이젠 일곱살이다.

이젠 할머니가 큰아들네에 가 자고 와도 할아버지와 지내기도 한다 했다.

 

토요일이라 엄마가 데리러 올텐데, 오지 않으니, 엄마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한다.

할머니는 걸어 보아라 하고, 할아버지는 않된다고 하시니, 전화를 못했다.

우리가 자라온 때보다야 덜 엄하지만, 그래도 요즘 할아버지들 보다 엄한 것이다.

 

준서외할아버지와 할미는 그렇게 못한다.

준서가 에미에게 전화를 하겠다면 아직은 어리니 걸어 주었다. 엄마 근무시간 말고는.

그렇게 크면서 준서 스스로  되고, 않되고를 익혀가게 했지만,

하고 싶은 것도 어른의 승낙이 없으면 하지 못하고 참을 수 있는 것은 아주 필요한 교육이기도 한다.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가 물러서 하나나 둘 커는 손주들에게 그렇게 엄하게를 하지 못해서 그렇지

아주 아주 필요한 교육일 것이다.

 

아주 엄하게 키웠던 5남매는 부모에게 공손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집안에 초상이라도 나면

우리 아랫대가 저희들 제종간에 10명이 되는데, 그런 큰일도 척척 잘 해낸다.

장례식장 운영하시는 분들도 칭찬할 정도로 그렇게 잘 자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꼬장한 어른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준서외할아버지나, 준서할미는 절대로 그렇게 꼬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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