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어느 모녀 이야기

이쁜준서 2008. 7. 4. 13:18

입원한 동생의 병실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만났던 모녀 이야기이다.

 

딸인 환자는 키도 몸집도 한품에 꼭 안기울듯한 사람이었다.

이목구비도 예쁘게 생겼고, 또 보호자 없는 환자에겐 맘도 쓰주고, 분위기메이커였다.

마흔 여덟이라 했는데, 그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성격이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동생말로는 찾아 오는 사람도 많았고, 또 밥을 하고, 김치를 담구어 한통 담고 그렇게 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 말에 내 대답이 저 댁이 아마도 친구들에게 그것보다 더 베풀었지 싶다. 어렸을 적에는 얼마나 예뻤을까?

지난 세월이 평탄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늙는게 아까울만큼 예뻤다.

 

팔순의 노모가 일주일간 병원에서 숙식을 하시면서 병간호를 하셨다 했다.

퇴원 수속을 밟아야 하는데, 주치의의 소견서가 내려 오지 않아 기다리는 사이에 환자 당자는 어디론가 갔고, 병실에서 그 모친이 누웠다 앉았다.

지루해 하셨다.

환자들은 운동한다고 거의 다 나가고, 병원에서 숙식을 하셔서 힘 드셨지요? 라 했더니

집에가면 밥을 해  PC 방으로 날라야하고, 어린아이들도 둘 있고, 병원에서는 내가 쉰 겁니다라 하셨다.

아들이 이혼을 해 손자녀석 하나를 데리고 딸네집 외손자와 어린아이들 둘을 건사하시고, 살림을 도 맡아 하시는 모양이었다.

 

환자인 그 딸에게 전해 들은 말을 그대로 하다 나를 흠짓 보고 동생이 고쳐 말하기도 한 것이 있는데,

엄마는 내가 준 돈으로 룰루날라하면서 살림을 산다고 한 모양이다.

룰루날라란 대목에서 멈칫하다, 딸네집 살림을 돌 보아 주시는 모양이라 고쳐 말했다.

복강경 수술을 했고, 아직 복대를 한 몸으로 엎드릴 수는 없었는데, 퇴원수속을 다 하고, 짐 가방 둘을 겉으로 들어내니,

병원에서 먹던 약봉지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가방을 들고 나갈려는 그모친에게 약봉지도 떨어진 줄도 모르고, 뭣을 챙겼냐고 하니, 딸의 신경질적인 소리에 얼어버려서 약봉지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더듬거리시다 약봉지는 다른 사람이 챙겼고, 서둘러 나가시는데, 우리와 인사를 한다고 약간 뒤쳐진 환자인 그 딸은

연신 눈을 흘긴다. 자기 어머니를 보고.

 

순간적인 판단력도, 몸 움직임도, 남의 말을 알아 듣는 것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 다를것인데, 아직 쉰살이, 에쉰살이, 칠순이, 팔순이 되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아직이야, 나 스스로는 아픈곳이 많아도, 일상도 챙기고, 아이들에게도, 챙겨 줄수 있지만,

그 할머니의 모습이 장래의 우리 세대의 모습 같고, 민서할머니의 올리 신 글 중의 할머니도 생각나고, 그 날은 맘이 애렸다.

 

그렇다고 그 딸이 나쁜 사람이 아닌 점이 더 나를 맘 애리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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