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지겟군과, 리어카군.....

이쁜준서 2008. 7. 1. 11:42

지하철 신촌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초행길이였는데, 나이가 50대 후반인 기사분이 더워에 지친 표정이셨다.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 날씨는 덥고, 하루 종일 일을 하셨을테니 말이다.

누가 입원을 하셨어요? / 어디에서 오셨어요? / 내가 35년전에 경상도에 잠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경상도 아가씨는 처음 사귀기가 힘이 들어 그렇지

사귀면 결혼상대로는 좋다란 소리를 들었다 하셨다.

나는 서울토박이 이고, 나는 서울 사람을 좋아합니다라 말문을 열었다..

서울사람은/본토박이 서울사람을 말하는 겁니다란 단서를 단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셈이 정확하고, 모르는 사람과 섞여서도 남을 배려 할줄 안다라 했다.

조금 쌀쌀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정확해서 그렇게 보일뿐이라 했다.

 

전라도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전라도를 좋아한다라 했다.

우선 음식이 맛나고, 길이 훤하게 뚫여있어 좋은데, 사람들은 싹싹하지만, 그 깃발 하나만 꽂으면 구별을 할 줄 모른다 했다.

경상도는 무대뽀이고, 무경우라 말했고.

가만이 들었다.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들어 주었다.

내가 한말은 서울이던, 전라도이던, 경상도이던, 양식있는 사람들은 다 같겠지요.

각지방이 이제는 섞여서 살고, 또 이 세상이 눈 앞에 것만 보고 살기에, 다 같다 생각하는데요 라 말했다.

그랬더니, 이따 다시 갈거냐? 고 묻는다.

내일 갈거란 대답에, 밤 10시가 넘으면 택시 탈 생각을 말아라 한다.

짧은 거리는 거의가 다 승차거부를 한다고, 내가 서울사람이고, 택시기사이지만, 나쁜넘들이라 말한다.

낮에도 그럽니까? 라 물으니 낮엔 신촌로터리에서는 단거리라도,승차거부가 없다라 했다.

 

 

택시는 사람을 태워 나르는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6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서울역이나, 대구역이나, 부산역에는 지겟군이 있었다.

지게를 내려 놓고, 지게에 앉거나, 지게에 기대어 손님을 기다리다가 가방이나, 보따리를 무겁게 든 사람을 보면 얼른 뛰어와 짐을 받아 지게에 얹고,

버스 정류장이나 장거리가 아니면 집까지 짐을 져다주고, 돈을 받았다.

큰도매시장에도 지겟군이 있었다.

그러다 리어카가 지겟군과 병존했다.

리어카는 바퀴가 있으니 더 많이 실을 수 있었다.

청과시장에서 배추 100여포기(지금의 배추 반정도의 크기) 를 싣고, 30분~1시간 정도의 거리까지 배달을 했다.

가까운 거리에는 이삿짐도 나르기도 했다. 리어카가 보통의 것보다 좀 크긴 했었지만.

 

그러다 지겟군이 사라지고, 삼륜차와 리어카가 병존했다.

삼륜차는 앞 바퀴는 하나고 뒷바퀴가 둘이고, 짐칸이 있어 짐을 싣고 다닐 수 있게 된것이었다.

리어카 보다는 더 많이 실을 수 있고, 또 리어카보다는 보다 빨랐고, 짐을 맡긴 사람도 운전기사 옆에 타고 올 수 있었다.

리어카는 짐이 많으면 뒤에서 밀어 주면서 같이 걸어 오던 것과 비교하면 월등한 것이였다.

 

각자 집에 자가용 차가 있게 되면서는 그리 덩치가 큰 짐을 들고 다니지도 않게 되었고, 좀 무거운 짐을 들었을 경우나, 낯선 곳이거나 그러면

택시를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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