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그곳도 사람 사는 동네...

이쁜준서 2008. 6. 30. 20:13

미국으로 가서 5년인가? 6년만에 온 사촌 동생을 만나러 갔었다.

미국에서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도 데려다 주어야하고, 하교도 시켜야하고, 아이들이 하교 후 집으로 올 때는 보호자가 있어야하고, 보호자가 그런 역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부모 밑에 두지 않고, 자기들 임의대로 보호자를 지정해 아이들을 보낸다고 했다.

그러니, 한국에서 친척들이 오는데 마중을 가거나 관광을 시키러 갈려면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하교와 하교 후 부모에게  인계 할 때까지 맡길 곳이 있어야 한다 했다.

그러니 한국에서 다녀 가신 친척들은 때론 섭섭해 하시지만 그곳의 실정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보내면서 1~2년 맡아 달라고 하지만, 그렇게 할려면 우선 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또 하는 일이 없다고 해도 그 아이의 등, 하교까지

책임지고, 아이들 혼자 집에 두면 않되기에 일정액을 맡고 거두어 주는 사람이 아니면 어렵다 했다.

여러 단계로 유학을 할 경우의 이야기도 들었다.

 

강남에서 사촌동생을 만나고, 지하철을 3호선을 탔다가 2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갔을 때는 어두워 질 때 였다.

우선 밥걱정을 시키지 않고, 밤에 일찍 잠들것도 아니어서 수부에서 식당을 물어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들어 갔다.

그런데 택시에서 내려 입원병동 앞에 서니, 병원이 아니고, 장갑차라도 생산하는 큰 공장 앞에 선듯한 느낌이었다.

수술한지 나흘째 날인 동생이 얼마나 아파할까? 생각하고 간호원들이 일하는 곳에서 물었더니 방을 가르쳐 주었고, 복도에는 환자들이 운동한다고, 걷고 있었고,

TV를 볼 수 있는 곳에 갔더니 동생은 없었지만, 그래도 웃는 웃음소리도 났다.

병실 밖에 어디엔가 있는 동생과 통화를 하고, 병실에서 기다릴려고 들어 갔더니 밖은 하마 어두운데도 병실 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5인실이었는데, 알고보니 하룻밤을 자고 난 오늘 세 사람이 퇴원을 하고, 동생과 또 수술한지 한 열흘정도 되는 환자등 비교적 고통스럽지 않은

환자들이었고, 또 분위기메이커가 있기도 했다.

 

그래 수술하고, 한 이틀은 죽을만큼의 고통을 넘어야 하지만 그 고비를 다 같이 겪어서 빨리도 친숙해지고 그랬는 모양이다.

방구가 나왔네, 오줌량이 얼마이네, 대변 이야기등이 아주 중요한 그런 본능이 제일 중요한 이야기 였고.

식사 시간이 되니, 병문안 오면서 김치를 받았는 분들은 김치통을 들고 다니면서 김치도 노나주고, 수액제를 맞고 있어 한 쪽 손이 자유롭지

않은 보호자 없는 집 밥상도 치워 주고, 반찬도 냉장고에서 챙겨주고, 그런 인정이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고, 1~4일 정도 같이 있으면 헤어지면서도 / 그곳도 사람 사는 동네였다.

인정이 흐르는 사람 사는 동네였다.

'샘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모녀 이야기  (0) 2008.07.04
지겟군과, 리어카군.....  (0) 2008.07.01
우리들의 일상들....  (0) 2008.06.28
세탁기가 고장나 만난 기사  (0) 2008.06.24
황당했고.....  (0) 2008.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