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여름 장마 중이었을까? 아니면 여름날 소낙비였을까?
아니다, 여름 장마 중도 있었고, 여름 소낙비였을 때도 있었다.
십여리길을 빗속으로 걸어 다닌적이 우리시대 초등, 중등 학교 때엔 많았다.
집도 멀었지만, 또 집에도 변변한 우산이 시골에서 있을리가 없었다.
비 오는 날 들에 물꼬를 트러 나가는 어른들은 짚으로 만든 것을 걸치고, 나가셨지만, 그래도 옷 젖기는 마찬가지였다.
날비를 그대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였지.
비 올 때 들에 나갈 때 걸치던 우장인데,
실제 그 때 사용했던 우장은 이것보다는 더 폼새가 있었다.
학교 갈 때는 집을 나설 때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갔었는데, 우산도 준비 못하고 간 날 비가 오면 그 십여리길을 날비를 맞고 오는 것이다.
퍼붓는 장대비를 맨몸으로 맞고 오는 것이라 날비라 표현하는 것이다.
그 당시 신발은 검은 고무신도 신었고,천으로 만든 베신을 신기도 했었다.
베신은 귀한 것이였다.
그 운동화는 겉은 검은색이거나 곤색이 많았고, 신발 안 쪽은 흰색이었다.
새 신이라도 하루만 십여리 길, 학교를 갔다 오면 신발 바닥이 시커멓다.
신발바닥이 시커멓다고, 자주 빠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신고 다니는데, 장대비를 그냥 맞고 오면 빗물이 신발 안으로 들어 갔다 나왔다 그렇게 질퍽거리면서
신발 바닥이 깨끗하게 되었다.
비는 누구나 그렇게 맞고 다녔지만 베신을 신은 사람은 별 없어서, 그 베신이 깨끗하게 씻기우면 왜 그리 신기했던지!
지금도 그 때 그 광경이 눈에 선~하다.
그 베신은 새 신일 때보다 어디엔가 떨어지고 더 오래 신었을 것이다.
베로 만든 신이라, 접히는 부분부터 이내 떨어졌었다.
지금이야 어쩌다 비를 흠뻑 맞고 집으로 돌와오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겠지만, 그 때는 씻는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도 샘에 가 길어와 먹는 집이
많았기에 처마끝의 낙수물을 받아 놓은 것에 오른발 한번, 왼발 한번 풍덩 풍덩 담구면 마루로 올라서고, 옷을 갈아 입으면 그만이다.
입이 새파랗게 되고 벌벌 떤다고, 따뜻한 아랫목이 여름날 따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따뜻한 물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였다.
소를 먹이러 갈 때는 검은 고무신을 신고 갔었는데, 소 먹이러 갔다가도 장대비를 맞은 적이 많았다.
그냥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것이 자연스런 시절이었다.
그 때는 공기가 오염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비를 맞는다고 다른 걱정은 없었고, 그렇게 비를 맞아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종일 오는 비가 장대처럼 한 순간은 퍼 붓기도 하니 옛날 그 때 생각이 났다.
그 때는 그런날 따뜻한 칼국수나, 수제비가 저녁 식사이기를 바랬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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