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밀농사

이쁜준서 2008. 6. 5. 18:20

 

 ???

나무 밑에 무더기로 씨가 맺힌

밀농사가 언제까지 지었는지는 모른다.

60년대에 밀농사를 짓던 시기에 밀은 비오는 날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다.

가마솥에 통밀과 팥을 넣고 삶다가, 다 익으면 사카리라고 단맛을 내는 것과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어 먹었다.

밖은 비가 주룩주룩 오고,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그런 날 엄니들이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도시에서는 통밀은 없었고, 밀가루을 후룩하게 만들어서는 작은 국자로 철냄비에 얇게 부쳐서는 설탕을 한줄 넣고, 돌돌 말아서 먹기도 했었다.

 

그 당시 시골에는 전기가 없었으니 제법 멀리 물레방앗간을 찾아 가 밀을 빻아 왔다.

붉으레하고, 반죽을 해 손칼국수로 만들어도 매끄럽지가 않았고, 콩가루를 넣고 만들면 아주 얇게 만들 수도 있긴 했다.

그러나 여름날 햇감자를 넣고, 수제비를 만들면, 구수하니 맛이 있었다.

햇밀이 추수해 밀가루를 빻아 먹을 때쯤이면 보리도 타작을 했었기에 보리쌀도 있을 무렵이다.

그러니 시골에서는 쌀을 찾기가 어려운 깡보리밥을 해 먹었다.

 

들판으로 소에게 풀을 멕이러 간 우리들에겐 보리밥보다 칼국수나 수제비가 더 맛이 있었다.

소멕이고 돌아오면서 집에가면 수제비 해 놓았으면...... 하고 오고, 왔을 때 수제비를 하는 날이면 신이 났었던 거다.

그랬던것이 60년대 후반이 되면서 미국산 밀가루가 배급 되기 시작했다.

도시에만 배급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시골에도 밀가루가 배급되었다.

배급 밀가루로 칼국수를 만들면 색도 하얗고, 국수발도 좋고, 씹는 맛은 매끌거렸다.

그러다 몇년이 흘러가 아마도 점심 한끼는 분식으로 하자는 구호가 나돌 때쯤인 70년대부터 밀농사가 서서이 없어져 갔다.

 

이틀전에 식자재 도매상으로 갔다.

식자재 도매상엔 주로 고객이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들인데, 그리 멀지 않아 때때로 간다.

지금 시장 노전에서 농사 지은 것을 파는 곳에는 찜고추가 나오질 않는다.

첫물이니하면서 된장에 찍어 먹을정도의 고추가 나온다.

식자재 도매상에는 식당에서 찜고추를 많이 쓰니, 찜고추가 무게로 달아서 냉장보관대에 넣어 두었다.

찜고추를 살 목적으로 갔었지만, 말린 국수도 더 보충해 둘려고 국수뭉치를 보았다.

밀가루값이 오르기전에는 3,500원이었던 것이, 5,900으로 정가가 찍혀 있었다.

계산을 해 보면 쌀값과 거의 막먹는다.

이제껏 한참에 이렇게 밀가루나 밀가루 제품이 오른적이 없다.

올라도 체면없이 올렸다 함이 맞는 말일 것이다.

라면의 비교치 가격은 모른다. 그렇지만 밀가루로 스프까지 있는 라면은 또 얼마나 올랐을까?

중국 지진사태도 보았고, 국제사회가 지구의 환경 오염으로 언젠가 식량이 태부족이어서 식량이 전쟁이 되는 날이 올 것만 같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경작지에 다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모자랄텐데, 경작지에 주택을 건설한다.

지금이야 밀가루도, 쌀도 마음대로 수입하지만, 나중은 어떻게 할까나......? 의심스럽다.

없어져 가고, 오염되어 가는 우리의 환경을 복원 할 수도 없을텐데......

 

농사 하시는 분의 말씀은 먹거리가 단순한 먹거리만이 아니고, 결국은 환경의 문제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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