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아기 포대기

이쁜준서 2008. 5. 28. 00:22

준서에미를 준서외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가 낳았다.

친정엄니께서 장사를 하시고 계셔서, 가 있을 형편도 못 되었고, 시엄니, 시동생, 시뉘가 함께 살고 있었는 시댁이자 우리집에서 몸 조리를 했다.

순산이 아니었고, 원체가 잘 먹질 않으니 그 당시 풋오이가 귀할 때인데, 풋오이를 양념 없이 간만해서 주면 잘 먹�다.

그러니 시엄니께선 오이 반찬을 자주 해 주셨고, 지금 생각하면 산모에겐 그리 좋은 반찬은 아니였던 것이었다.

 

아기 낳으러 병원에 가 있으면서 그리웠던 친정 엄니는 여동생을 데리고, 한달이 좀 지나서야 아기를 보러 부산에서 오셨다.

아기 포대기를 맞추었다 하시면서 연초록이기도하고, 진연두이기도 한 꼼꼼하게 누인 포대기와 아기 옷 몇점을 가지고 오셨다.

그러다 여름이 되니 여름 포대기가 필요해 졌고, 춘추용 포대기 길이의 반정도 되는 것을 샀다.

그 때야 요즘처럼 다양한 포대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끈이 양쪽에 두개 달렸고, 아기를 등에 업고 한바퀴 빙 두르고는 그 끈으로 또 한바퀴 돌려서 단단히 묶었던 그런 것이였다.

그러다 또 겨울이 왔다.

겨울용은 모양은 같으나 솜을 두툼하게 넣고 듬성듬성하게 누인 포대기였다.

포대기 하나 장만하면 아이 서넛은 키울수 있었다.

준서에미와 준서이모를 키우고 동서를 주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생각난다.

진한 연두색의 포대기가 어찌도 예쁘고 좋았던지!

예전 어른들 아 에미  치장은 포대기만 있으면 된다 하셨다.

준서에미를 업은 포대기는 그런면에서는 참 좋은 치장이 되었기도 했다.

바뻐서 산후구완도 못해 주는 딸이 안쓰러워 우리집 나서시던 그 때 친정엄니 얼굴이 생각난다.

나 역시 출산 시에는 가지 않았다.

조리원(인천)에 있던 준서에미를 20일이 못되어 승용차로 데려 와 100일 하루~이틀 전까지 구완을 해 주긴 했었다.

 

준서를 보내면서 포대기를 사 주었다.

옛날식으로 된 포대기를 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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