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살다 초등 4학년 봄 고향으로 갔다.
그 때는 신학기가 4월부터 시작했기에 산과 들에는 봄이 시작하던 그런 때였고,
내가 가서 학교 운동장에는 사꾸라꽃이 (그 때는 벗꽃을 그렇게 불렀다) 이 피었고,
겹 사꾸라 꽃이 필 때는 완전한 봄이었다.
시골에서는 내 나이보다 어려도 소풀을 뜯으러 다니고, 소풀을 먹이러 다녔다.
파릇파릇 새싹이 논둑, 밭둑에 올라오면 호미를 들고 소풀을 캐러 다니는 거다.
풀이 더 자라면 낫으로 베어 오는 것이다.
지금에 생각하면 공해 하나 없던 그 시절의 소풀은 지금의 웰빙이라고 하는 산야초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뿌리채 캐어서는 싸리 소쿠리를 들고 가는데, 냇물에 씻어서 가지고 오면 ,
머슴방에 소 외양간이 같이 있어, 들판에 풀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아침, 저녁으로 소죽을 끓이는데
들에서 캐온 풀과 콩깍지 같은 것을 함께 넣고 물(부엌에서 나온 구정물)을 부어 끓이다 푹 끓여
졌으면 보리등게나 고운 살 등게를 넣고 소에게 준다.
머슴방은 그 소죽 끓이는 것으로 난방을 했던 것이다.
머슴이래야 농사일 돕는 5촌아찌였고, 표현을 하자니 머슴이라 하지만 그냥 사랑방이라 하기엔
품격이 없어 그리 부르는 정도의 크기였다.
그리하다 풀이 자라니 소를 몰고 들고 나가 풀을 멕이고 오는 것이 우리의 일이였다.
처음으로 초등4학년의 아이가 소 이까리를 손에 쥐고 소를 몰고 가는데, 내가 소를 몰고 가는게
아니고, 내가 소에게 이리 저리 휘둘리는 것이였다.
내가 소를 겁을 내니, 소가 나를 얕보았던 것이다.
들에 풀어 놓고 소를 먹이면 다른 집 소들은 덜한데, 우리 소는 꼭 보리밭으로 콩밭으로 들어
가고, 우리 소가 들어가면 다른 소들도 들어가고, 어른들에게 어찌나 야단을 맞았던지!
딴집 소는 끌어내면 나오기나 하는데 우리 소는 끌어내어도 나오질 않았다.
뜯어 먹고, 밟고, 보리는 덜한데, 콩은 그리되면 농사에 지장이 많은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야단을 맞고, 들에서도 야단을 맞고, 그러다 보니 약이 올라서 내가 독해졌다.
원체 순하기만 한 아이도 아니었고,
그래 소 이까리(소 코뚜래와 멍에를 이은 끈) 를 바짝 잡고 남은 소 끈으로 채찍으로 때리듯
때렸다.
약이 올라서 하는 것이니 소가 아프다거나 그런 것은 염두에도 없고, 한 서너번은 소가 맞았을거다.
그런 뒤에는 바짝은 아니어도 소 이까리를 잡고 이랴 이랴 하거나 워~워 하면 소는 내 말을
잘 들었다.
아마도 다른 집 소보다 더 말을 잘 들었던 것 같다.
그 큰 소의 눈을 내작은 눈으로도 제압을 했으니 말이다.(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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