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동생이 문안전화가 와서,
자기 시고모님 댁 86세이신
시누이 이야기를 했다.
자주 뵙지는 않는데,
앉아 계실 때도 조신하시고,
얼굴에는 늘 미소가 있으시고,
처녀 때 이화여대 의예과에
다니시다 결혼을 하고 학업은
포기했다더라고.
그러나 자기 딸은 의사가 되었다고 딸의 사위도 의사라고.
그런데 그분이 치매가 와서
집에서 모시다가 시설로 모셨는데 따님도 나이가 많은데도 다시 집으로
모셔다가 따님이 간호를
하신다 했다.
그러면서 치매약도 끊었는데
상태는 호전 되었다고
동생에게 치매는 누구나 올 수 있는데 일단은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게이지를 없애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누구나 맘속의 분노게이지는 있다고 보는데.
어떤 때는 참을 수 있고,
어떤 때는 막 일어나는 것을
참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무관심이 되지 싶다고,
죽을 때까지 노년을 살아가는 것이 그 과정이라 했다.
자식이 있다고?
끝까지 혼자일 것도 연습해야 한다.
그제는 울산지방 고향의
막내숙모님이 별세하셨다는
모바일 부고장이 왔다.
향년 89세이시고, 쓰러지셔서
울산대병원에서 뇌수술도 하셨고 요양병원으로 모셔서
잘 지내신다고 했는데,
큰아들은 위를 절제하고.
7차 항암까지 했는데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니,
또 얼마 있었더니 그 동생의
딸아이 모바일청첩징이 오고,
결혼날은 설명절 지나고 곧이 던데,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사촌 남동생이 고향산소도
관리하고 했는데,
큰집사촌들은 서울살이 하고
고향 산소자리도 다 모를 것인데,
아득한 소식들이었다.
사촌동생들이 정신없을 것 같아서 전화도 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 보고 위로할 말도 없고,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고,
자식 남매 있는 숙모님 한 분은 그 자식들은 외국에 산지가 오래이고,
혼자서 서울아파트에
사셨는데 전화로 통화하는 말이 듣지 못하시게 되어
1년이 지났는데 어찌 되신 지도 모른다.
전화기는 꺼져 있고,
연금도 넉넉하게 받고 있으셨으니 친정조카들이
요양병원으로 모셨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정남동생도 계시니.
한번은 일주일에 두번 오는
젊었던 시절 일주일에 세번 왔던 가사도우미분이 혼자 사시는것이 안타까워 내가 아직도 다닌다고,
전화를 받았다.
그 때도 숙모님은 전화 통화가 할 수 없으시다고,
조카도 많다 하고 내이름 끝자를 물으면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렇게 좋아 하시더라고.
접니다.
저가 몸이 션찮아서 좀 나으면 가겠다 했더니 자기가 월요일,
금요일 오니 그날 오면 집도 가르쳐 주겠다고,
나는 못갔고,
지금은 전화기는 끄져 있고.
연락이 안된다.
인생은 그런것이다.
다 포기하는것을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