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이란유목민 후예들 이야기

이쁜준서 2025. 9. 14. 09:52

이들의  이야기 중에는 제일 선호하는 한  가정이 있다.
예전 유목민으로 살 때는,
늑대와 여우와 거친  자연 속에서
우리나라 집성촌에서도 한 정지간에서 6촌까지 난다란 말이 있었듯이,
그들도 양이나 염소를 치면서,
자식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그렇게 대 가족으로 옮겨 다니면서 살았을 것이다.

지금 이사 부모세대들도 결혼을 하면서 자기 자식들을 키우고,
그들이 말하는 온대지방에서
여름 초기에  한대지방으로 험한
산길을 넘어 이주를 하고,
아직은 한대지방에 있어도
또 겨울은 추우니 요즘  열대지방으로 이주를  준비 중이다.

대대로 유목민으로 살아온 것이 있어서 우리는 백부,중백부는 큰아버지로,
아버지 동생들은 숙부로 불렀고,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더 친근했다.
결혼 전에는 삼촌으로 부른다.
그들은 아버지 형제들은
다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고.
지금도 외갓집에 와서도 살고 있고,
결혼해서 아이들이 6남매가 되어도, 경제력이 어렵다 싶으면,
또 아기들이 아파서 병원 갈 일이
생기면  친정에서 먹을 것도 사주고, 아기들도 병원에 데리고 간다.
유목민으로 살기가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어려우니,
형제들이 돕고 사는 듯했다.

내가 시골 집성촌에서 살 때.
서울에서 그때로서도 고급 공무원이 셨던  작은  아버지는 6.25  전쟁 때도  참전하셨던 분이시고, 군인으로서 미국연수를 1년여 다녀오신
성공하신 분이셨다.
그 연세에 영어를 자유자재로 하셨으니까.

작은아버지께 두 숙부이신 내외분을  두 내외분을,
차례로,서울구경시켜 드린다고 모시고 갔는데, 화장실에서 좌변기에 앉는다는 것을 생각 못하셔서,
어찌어찌 올라가셨는데 앉기는
하셨는데 일어설 때
다리가 흔들거려서 이 노인분께서
조카 이름을 부르고  야단이
나셨던 일도 있었으니.
지금 이사 시골도 다 집을 새로 짓고 좌변기. 주방시설,
도시와 마찬가지로  주거 환경이 변한 것을 생각해보면
60년 사이에 급변을 했다.

내가  즐겨 보는 가정도
맏아들 자식들이  6명인데,
산골에서  도시가 가까운 곳으로
나가 새집을 짓고  살다가,
몇 달을   또 아주 큰집을 지었는데
이제 거진 건축은 마치고,
새집으로 동생들이 입주를
하게 될 듯이 보인다.
부모님은 열대지방으로 염소떼를
데리고 또 이주를 할듯이 보이고.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것은 화물차인데,
그들은 밴으로 부르던데.
그 밴을 샀고,
밴을 몰고  부모님이   계시는 산골로 먼저 갔는데,
제과점에서 맛난  과자빵을 한박스 사서 갔는데, 자기 식구들은
1개 정도 먹는데 이웃 세  집에는
쟁반  가득히 담아   보냈다.
새 차를 산 것이  좋은 일이니
이웃과 음식이라도 나누는
대대로 내려온 풍습 같은 것이였지  싶다.
한국의 예전 집성촌과  비숫한 인심의 모습이다.

우리가 발달하면서 다 잃어버린
인정의 이야기가 있어,
나는 매일 시청한다.

몇날 몇일 비가 많이 와서
화분 받침에 물이 가득 고였고.
기온은 많이 내려 갔고,
구근식물들은 이미 수분을 초과 흡수 했고,
찾아 가연서 물받침을   빼 주는 일을했다.
화분은 무겁고  받아주는 사람은 없고 화분은 빈 공간 없이 놓여 있고,
그래도 보았을 때 해야 할 일이라
식전 일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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