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 에미와 자식 관계 - 라 달았습니다.
태중에 길러서 낳아서 기른 자식과 에미는 본능으로 맺어져 있어 관계란 표현은 틀린다 생각합니다.
지금은 세상 소풍길 마치신 지가 30여년이 지난 우리 큰 이모님께서는 한 세상을 참으로 우여 곡절로 사셨던 분이십니다.
일본에서 결혼을 하시고,
두 부부가 신혼 때면서도 억척스럽게 일을 하셔서 집 장만도 하셨는데,
그 집이 원자폭탄 중심부에 있어 날아가 버리고,
해방이 되고 한국으로 나올 실 때 이모부님은 광기가 생겨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나오셨다
얼마 되지 않아 훌훌 저 세상으로 가시고 청상의 과부가 되신 이모님이 셨습니다.
남편도 없는 시댁 고향땅에도 있을 수 없으셨고,
친정 집에도 갈 수 없어
친정이 가까운 울산 시내에서 홀로 사셨는데,
그러다 6,25전쟁이 나고, 전쟁 고아가 몰렸던 울산의 어느 고아원에 보모로 들어 가셨다 합니다.
그렇게 몇년을 지내다 휴전이 되고,
부산으로 오셔서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화물회사인 마르보시 사택 집을 사게 되셨다 합니다.
방이 두칸, 툇마루가 있고, 작은 부엌에 그래도 작은 마당에는 작은 장독간도 있었지만,
화장실은 마주보면서 작은 골목은 길었고, 양 골목 입구에 공중 변소가 있었습니다.
요강을 두고 쓰던 시절이라 소변이야 문제 될 것이 없었고, 큰 볼일을 그 공중변소에 가는데, 어쩌다 밤에 가면
문짝은 없는 칸도 있었고, 바람에 문짝은 덜컹거리고, 귀신이라도 나옴직 했던 공중변소 였습니다.
물은 너른마당이란 제법 한 공터에 공동 수도가 있어 물 나오는 시간에 가서 길러다 먹었으니
자연 물지게로 돈을 주면 물 배달을 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귀한 수도물로 걸레를 빨기는 해야 겠고, 대야에 물을 조금 넣고 꼬작꼬작 빨았지요.
초등 4학년 때 준서할미가 여름방학 때 이모님 댁에 가서 시골 샘에서 두레박으로 퍼 쓰던 풍족한 물을
이모님 댁 마당에도 우물을 하나 파면 어떨까? 싶어 우물을 파자고 했었지요.
조금 파 내려가니 모래 땅이어서 파기도 그닥 어렵지 않고, 그 깊이는 초등 4학년 키 정도 깊이로 팠습니다.
청소 하는 물을 풍족하게 사용했었지요.
서론이 길어 졌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나고 휴전 후 1950년도 초반의 부산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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