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청국장을 주문하고...

이쁜준서 2009. 3. 16. 08:58

 

 산수유꽃

 

예전 준서할미가 어렸을 적에는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김장배추는 알이 그리 차지 않았다.

그 중에서 가려서 양념김장김치를 했었고, 또 동치미에 가려 넣었고, 거의 알이 차지 않은 것은 백김치처럼 소금물에 담구어 놓는다..

그 소금물에 담긴 배추를 내어 와 그냥 쭉쭉 찢어 먹기도 했지만, 우리집에는 살짝 한번 행구고는 가마솥 뚜겅 위에 얹어

찬기를 없애고 쌈으로 먹었다.

식구 전체가 쌈을 좋아해서 아침, 저녁 상에는 언제나 쌈이 있었고, 점심에는 철따라 또 쌈이 있었다.

 

 

 

울산이어서 젖갈을 일년에 두번을 담았다.

그리 크지 않은 칼치를 그 때의 말로 표현하면 한하꼬( 생선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나무상자) 사다가 칼치비늘을 호박잎이나  짚으로 깨끗하게 벗겨 내고는 회를 뜬다.

회를 뜨고 남은 생선머리와 내장등을 소금을 쳐 항아리에 넣어 두면 칼치속젖갈이 되는데,

그것까지 합치면 세번을 담는다 해도 된다.

(고래고기로 유명한 장생포도 버스를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았고, 집 뒤로 나가면 철길이 있었고,

그 철길따라 나가면, 바다가 있어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로 꼬시래기란 작은 고기를 잡아다

회를 해 먹었기에, 그 곳 사람들은 생선을 잘 다루었다)

봄에는 멸치로, 가을에는 전어로 그렇게 젖갈을 담았고, 김장김치에는 멸치젖갈과 칼치속젖갈을

첨가해서 담았던 시절이다.

젖갈에서 감칠맛이 났다고 하면 그 때의 젖갈을 먹지 않았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항아리에 젖갈을 담을 때 그 때말로 돌가루 종이라는 종이푸대가 3~4겹 황색종이로 만든것이 있는데,

그 종이 포대의 속지를 덮고, 짚으로 또 덮고 그렇게 담았다.

먹을 때는 한쪽으로 푹 눌리면 말간 젖갈액이 고이고 그런 젖갈은 정구지(부추) 김치를 담을 때나, 겨울의 삭힌 배추 쌈을 먹을 때

쌈장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 쌈장말고, 우리가 지금 청국장이라는 콩 띄운것을 발효된 알콩그대로 간장에 넣고,

양념장을 만들기도 했는데,

외갓집은 해방이 되어 일본에서 나오신 분들이라, 낫또장이라 불렀다.

그 때는 밥하는 가마솥에 된장 뚝배기를 넣었기에, 된장에 청국장을 넣지 않고,

그렇게 청국장을 생으로 먹었다.

겨울 내내 먹었는데, 아마도 덜 띄웠지 싶다.

 

경북 봉화마을에 청국장을 처음으로 주문했다.

자주 자주 주문을 받아 어느만큼 모아지면 청국장을 띄워서 파는 곳을 블로그를 통해서 알았다.

국산콩으로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국장 식당에도 들어가게 되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덜 띄운 것과, 식당에 들어가는 푹 띄운 것 두가지로

만든다고 알아서 주문하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집에서 슬로우쿠커에도 띄워 보았지만, 실은 잘 나오도록 잘 띄워졌는데도 맛는 예전 청국장 맛이 나질 않았다.

청국장의 예전 맛에는 우리 엄니도, 가족도 있고, 그 때의 산하도 있다.

겨울의 삭힌 배추쌈에 밥을 얹고, 양념된 청국장을 한 술 넣고, 먹었던 그 때의 그 맛은 이제 사라진 맛이다.

이 때쯤이면 겨울내 재걸음으로 덮어 두었던 정구지가 올라오고, 그저 손가락 길이 정도가 되면 베어다, 젖갈양념장에

쌈을 먹었던 그 알싸한 맛도 사라진 맛이다.

 

어머니도 가시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고, 게으른것 같았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고, 입맛도 변했다.

단지 늙지 않고 변하지 않은 것은 거울 보기전의 혼자만의 생각일 때 뿐이다.

현실은 세월따라 온통 다 변했다.

....뿐이다란 말은 어쩔 수 없이 귀결이 그렇게 된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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