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동무, 친구, 벗....

이쁜준서 2009. 2. 21. 10:24

 

내가 초등학교 시절 내 고향 산에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었다.

 

 

초등학교를 한 곳에서 다니질 못했다.

부산에서 자라다, 초등학교 4,5,6학년을 일제시대부터 있었다는 시골 초등학교를 다녔다.

정문 맞은편으로 보이는 산으로 올라 갈 수도 있고, 부산에서 다녔던 학교 운동장보다 훨씬 넓은 운동장에는 아주 오래 된

벗꽃나무도, 또 겹벗꽃 나무도 있었고, 실습지라는 논도, 채전밭도 있었다.

 

내가 4학년 때 전학을 갔을 때는 신학기가 4월이었다.

동무들도 나보다 서너살 위인 아이들도 있었고, 통치마 한복을 입고 오는 여자아이들도 있었고,

집에서 무명으로 만들어 입힌 꺼므레한 색의 윗도리를 입은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같은 반에 아버지 사촌동생이 있었으니 5촌이어서, 그 5촌과는 커서도 서먹서먹 했다.

 

학교까지 가는 길은 십여리가 되었고, 동해남부선의 철로도 있었고, 몇번 국도인지는 몰라도 버드나무가 양켠에 심어진 신작로도 있었다.

신작로라 하지 않았고, 한길이라 불렀다.

사라호 태풍 때였다.

추석날 태풍이 있었기에 철길이 끊어졌는지,  그 다음날, 다음 다음날도 울산쪽으로, 또 반대편인 경주쪽으로 걸어서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때는 태풍이라는 말보다 큰물이 졌다고 표현을 했었고, 그 큰물이 방뚝을 넘기전에 물 구경을 갔는데, 사과도 떠내려 가고,

돼지도 떠내려 가는 것을 보았는데, 끝내 방천뚝이 유실되면서 들이 물에 잠기기도 했었던 것이다.

 

작년에 울산으로 가면서 동대구역에서 해운대가 종착역인 새마을호를 탔는데, 가다보니 그 열차가 예전 동해남부선 철로로 가는 것이였다.

내 고향 내가 살던 집이 보이는 고향동네 앞으로 지나갔다.

초등학교를 갈려면 처음은 철로가 동네와 가까워 철로를 따라 가다가, 한길과 만나면 다시 한길로 쭉 가면 면사무소가 있는

곳을 지나 학교로 갔었다.

고향을 일찍 나와서  그 때 동무들은 두어명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길에서 만나면 아무도 알아 볼 수는 없을듯 하다.

그 때 동무중에 사촌동생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아 갔다는 동무가 있는데,아직 전화는 오지 않았다.

50대만 되었어도 만나고 싶을텐데, 이 나이에 만나보아야 몇년 있지 않으면 하나, 둘씩 저 세상으로 갈테고, 연락이 와도 만날 생각은 없다.

근 4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무슨 정이 남았겠으며, 무슨 할말이 남았겠는가?

 

대구란 곳으로 결혼을 해 왔을 때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지금까지 처녀적에 알았던 사람을 다시 만나 알고 재내지도 않는다.

우연하게 부산이 친정이라는 친구가 두어명 생겼을 뿐이다.

대구에 살면서 정말 친한 친구들이 생겼기도 하다.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여학교 졸업하고 모임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 서울에 거의 다 있다.

자녀들 결혼식이 있으면 가끔 만나기도 한다.

그저 그 뿐이다.

 

꽃 피는 봄이오면 동해남부선 기차를 타고 블벗님을 만나러 가야 겠다.

변한 세상은 얼굴 한번 않보고도 벗이 된다.

서로간 맘이 담긴 글을 읽어 보고, 또 댓글을 주고 받으면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공감대가 있어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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