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이 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은 사교육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학원들을 다녔다.
초창기의 학원은 거의 비슷비슷 했는데, 부모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학원을 넣을 수 있는 환경이 되니, 학원들의 차이가 엄청나게 되었다.
어떤 학원의 우수반이 될려면 시험을 쳐서 다니게 되고, 학교에서
선생님의 사랑의 매도 고발하기도 하는 사회가 되어도,
일급학원의 선생님의 사랑의 회초리는 문제 될것이 없는 경우도 생겼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모자라는 잠은 학교에서 졸기도 한다 하기도 했다.
( 직접 교실에서 본 것이 아니고, TV등에서 본바로는)
준서에미가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되니, 중학교 영어, 수학 공부를 한다고 학원에 넣는 사람이 많았다.'
어줍잖게 영어공부를 하면 않될것 같아 학원을 보내지도 않았고, 알파벳을 따로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냥 계속하던 피아노만 했었다.
6학년 때는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준서에미와 준서이모를 가르쳤다.
학원을 차려 놓고 가르치던 분이 멀리 이사를 가 학원은 차리지 않고,
가르치던 아이들 집으로 돌면서 가르쳤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준서에미가 배정 받은 중학교는.시내에 있는 학교라 다들 영어를 배우고
왔기에 처음에 많이 힘들었었다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준서에미가 한 말이였다.
준서할미도 준서이모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먼거리의 영어학원에 보내기도 했었다.
그 때쯤에는 우리의 살림살이들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옛날 방식으로는 의, 식, 주가 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맞벌이를 하게 되었고,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이 많이 생겨났다.
주부가 일을 나가니, 아이들 음식을 예전처럼 매 끼니마다 정성으로 만들어 줄 수가 없어지면서,
짜장면을 시켜 주기도 했었고, 그러다 통닭을 시켜 먹고, 피자를 시켜 먹고,그러다 휴일이면 외식이라면서
식당으로 식구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 호황기엔 자녀들이 있는 집에서는 외식이 필수가 되는 그런 시절을 지나면서.
식당은 정말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체인인 식당도 생겼고, 그러면서 식당이 커지고, 인테리어도 어마어마하게 꾸미게 되었다.
외국인이 식당가를 보면서 한국은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고,다 사 먹느냐는 소리를 할정도가 되었다.
준서할미는 아직도 집에서 음식을 해 먹지 외식을 한다고 가족들이 밖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각종 모임들이 있으니 한달에도 몇번은 식당음식을 먹기는 한다.
큰꽃 으아리 이다.
사진으로만 보았는데도 하도 꽃이 좋아,
야생화 전문점에서 겨우 가느다란 줄기만 있는것을 7,000원을 주고 사왔다.
파는 사람의 말로는 죽은 듯 해도 봄이면 싹이 날 것이라고 꺾지 말라 했다.
지금의 저 모습을 보기엔,
봄이 되어 새 움이 돋고, 꽃이 필것 같지 않아 봄을 더 기다리게 한다.
분재화분에 아주 약한 줄기를 올렸고, 사진으로는 나무줄기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불경기는 불경기인 모양이다.
번화가에서 오랫동안 호황이었던 큰 식당들이 문을 닫는다.
문 닫은 식당들을 보면서 맘이 착찹하다.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외식문화도 지양 될것이있긴 하지만, 경제가 돌아야 하는데, 저렇게 문을 닫으면
연관된 장사들과, 종업원을 비롯한 식당 경영주는 어떻게 생활하나....? 걱정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TV 뉴스에서 서민이고, 중산층이고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했다.
그만큼 현재가 불경기이기도 하지만, 장래가 불투명해서 일 것이다.
손수건과 마후라를 만드는 작은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이다.
손수건을 만들면서도 거의 중국에서 바느질은 하고, 고급 손수건만 중국에서 하는 작업과 한국에서 하는 작업이 있다 했다.
엔간한 기업의 옷은 중국에서 봉제작업을 하고, 북한에서도 작업된 것이 있다.
가장들의 일터였던 작은 섬유공장은 몇년사이에 문을 닫거나 조업이 줄어들었고, 철공소들도 비슷한 사정이라,
그런 일들을 하던 가장들이 도배일등의 서비스업으로 바꾸어 지게 되었다.
그러니 가장들의 벌이가 시원찮아서 아내들이 서비스산업쪽에서 일을 많이들 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섬유공장과 봉제공장들이 줄어 들었기에, 자연 일터가 그리 된 것이고, 식당들이 많았기에,
식당쪽이 일터가 된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길가다 큰 식당들이 문을 닫은 것을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불경기가 되면 될 수록 빈부의 차이는 더 나는 것이다.
불황을 어떻게 대처할거냐는 뉴스의 인터뷰에 외식을 줄이겠다는 대답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외식을 않겠다는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나마 줄이고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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