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밥상머리 교육...

이쁜준서 2008. 12. 10. 06:00

 

네살 8월의 모습

우리 세대가 어렸을 적에는 배 고픈 집도 많았다.

내가 중학교 때만 해도 배급쌀과 밀가루가 나오던 시절이었고,초등학교 때엔 학교 급식이 가루 우유도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 가루 우유를 그릇에 담고 밥 솥에 쪄 먹는 집도 있었는데, 아주 단단 했던 것 같다.

그러면 십여리 길 등교 길에, 돌려 가면서 조금씩 잇빨로 깨어 먹기도 했었고, 가을이면 찐쌀, 겨울이면 생고구마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구마는 부모님 몰래 가지고 온 것이라 씻지도 않았을 것인데, 한 입 베어서는 속은 먹고 껍데기 쪽은 버리고

그렇게 십여리 길을 가면서 돌려 먹었고, 교실에서도 돌려 먹었다.

교실 청소를 하면 그리 귀했던 찐쌀도, 고구마 껍질도 떨어져 있었다.

겨울에 교실에는 난로가 활 활 타고 있고, 도시락이 난로위에 차곡 차곡 엊혀 있고, 갖고 온 고구마를 난로 위에 구워 먹기도 했다.

먹는 것이 있으면 다 같이 노나 먹었지, 그 때는 왕따 당하는 사람도, 왕따 시키는 사람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때의 교육은 생활 전반에서 훈육을 하는 밥상머리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이사 한 자녀 가정도 많고, 많아야 2~3명의 자녀를 두었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대령해도 밥을 먹지 않으려 해

거저 다섯살이 되어도 밥을 떠 먹여 주고(준서할미도 마찬가지) 아이들이 먹지 않으려 상 앞에 앉지 않고 놀고 있으면

밥 그릇을 들고 따라 다니며 밥을 거두어 먹인다.

준서는 밥상 머리에 앉았을 때 밥을 떠 먹여 주기도 했지만, 밥 먹지 않겠다고 하면 준서외할아버지와 할미는 상관 없이 밥을 먹었다.

그러면 놀다 준서가 상 앞에 앉게 되었고, 할미가 떠 먹여 주면 매사 스스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준서가 떠 먹었다.

음식 귀한 줄도 모르고, 식사 할 때는 상 앞에 앉아 먹는 것이라는 것도 아예 당췌 알 수가 없고,  이런 어린시절을 지나,

청소년기는 학교가 파하면 학원으로 갔다 밤 늦은 귀가를 하는 자녀들은 집안의 왕이 된다.

한자녀를 거두어 먹이기엔 음식도 귀하지 않고, 또 요즘 젊은 에미들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가공식품도 많이 먹고,

배달 된 음식도 많이 먹는 그런 시절이다.

혀 끝에 닿는 얕은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밥의 맛 자체를 알지 못하는데, 밥상머리 교육이란 힘이 드는 것이다.

 

 

네살 10월의 모습

 

그래도 준서는 아토피가 있는 아이라서 가공식품을 먹이지 않았고, 아주 간혹 짜장면을 먹긴 했지만, 할미가 해 주는 음식을 먹었기에,

옥상의 아기 풋고추를, 독에서 떠온 생된장에 찍어 먹기도 했고, 돼지고기를 삶아 먹으면, 상치에 돼지고기를 얹고, 새우젖갈도,

얹고 그렇게 먹었다.

식사가 그러하니 과자도 서너개 먹으면 과자 봉지가 눈 앞에 있어도 먹지 않았다.

식습관이 그러하고, 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게 해 주어서 마트에서 장난감 코너를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작은 소품은 할미가 사 주었지만, 꼭 하고 싶은 것은 언젠가 외할아버지가, 아빠가, 엄마가 사 준다고 생각하기에 구경을 하는 것이다.

 

 준서할미가 커 오는 동안은 참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 많았다.

가시나는 크게 웃어도 않되고, 맛 있는 음식에 눈독을 들여서도 않되고, 아무리 어린 아기라도 남자 아기 자는 머릿맡을 지나 다녀서도

않되고, 집안에서는 정짓간에서 불 때고 설겆이하고, 샘이 울 밖에 있으면 물 길어다 정지간 드무에 가득 가득 부어야 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어찌 그리도 많았던지?

그 때의 어른들은 커 가는 여자들인 우리들에게 어찌 그리 하지 말라는 것도 많았고, 또 우리는 집안에서 작은 일꾼이기도 했다.

준서할미만 그런것이 아니고, 다른 집에도 다 그렇게 살고 있어 그리 억울하다거나 특별한 불만은 없었다.

꾸지람에 아니었다는 말을 하면 말대꾸가 되었기에 묵묵부답으로 그 꾸지람을 들을 수 밖에 없기도 했다.

 

그렇게 자라는 것은 지양 되어야 했지만, 지금처럼 자식들이 집안의 왕이 되는 것은 더 더구나 아닐것이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커 왔기에 결혼해서 시댁 식구간에도, 남편에게도, 자녀에게도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참으면서 살 수 있었지 싶다.

교육은 그리 거창한 것이기 보다는 생활속에서 하는 교육- 실종된 밥상머리 교육이 있어야 할것 같다.

 

 

                                           네살 11월의 모습

 

                                                                                                                        네살 11월의 모습

 

어제도 준서에게 준서를 사랑하시는 분이 선물을 보내셨다.

노란 좁쌀, 붉은 팥, 짚공예품 두 점, 영지버섯을 보내신 모양이다.

준서는 할미와 있을 때 곡식을 가지고 놀았고, 올 해는 준서네로 할미가 가서는 가루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네살인 작년부터 곡식을 가지고 놀았기에, 이건 먹는 것이라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아닌데, 준서가 가지고 놀고 있다.

그러니 흘리면 미안한 것이니 잘 갖고 놀아라 했었고, 준서가 곡식을 가지고 놀 때는 그랬었다.

먹는 것인데, 내가 가지고 놀아서 미안해 미안해 라 했었다.

가지고 노는 중에서 주워가면서 놀았고, 다 논 뒤에는 할미와 함께 줏어 담았다.

 

 

찰기장

 

 

각기 다른 알갱이의 곡식을 또 각기 다른 색의 잡곡을 가지고 놀았어도 그 촉감과 색감은 스쳐 갈 것이다.

노란색감의 곡식도, 또 그 작은 알갱이의 촉감도 준서할미가 가면 가지고 놀게 할것이다.(처음 만지는 곡식이다)

할미가 가 손질을 좀 해야 하기에....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우리세대들은 시집살이, 남편과의 생활에서도 억울한 경우도 참을 수 있었다.

달라진 환경에서 자라는 우리 준서세대는 세계와 경쟁해서 살아 남아야 할것이다.

지식 이전에 지긋이 참을 수 있음과, 뛰어난 감성이 필요할 것 같다.

준서세대가 잘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이 남아 있기를 기원하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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