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일흔 여섯이신 바깥 어른이시다.(외삼촌이 되심)
아기적 만주에서, 또 초등학교 시절의 일부는 일본에서, 해방이 되어 나와 초등학교는 한국에서
졸업했고........대학을 나오셔서 중등교사도 하셨고,
지금은 양산 산 밑 동네에 사시면서 비가 오지 않으면, 들에 나가 일하고 싶은만큼 일하다
집으로 들어오신다는 분의 이야기이다.
울타리로 둘러쳐지고, 자물쇠로 잠군 밭에는 띄엄 띄엄 심은 과채가 풀과 함께 자라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엔, 고등학교를 중학교 시절엔, 대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의 고등학교는
공민학교였다.
야간 고등공민학교가 6.25전쟁이 휴전되고 50년대 후반 안정되어 가면서 공민학교가 정규학교로
바꾸어 지게 되고, 그러니 졸업 때엔 정규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피난 시절 부산으로 와 있던
대학교가 서울로 돌아가고 분교로 남아 있던 대학교에 입학하고, 3~4학년은 서울 본교에서 졸업하고
그래었다.
큰아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공무원이라 농사일 할 사람이 필요해서 초등을 졸업하고는 학교를
못가게 하니, 내다 팔 물건을 소구르마에 싣고 읍내로 자주 가다 아침 학교로 등교하는
또래 학생들이 너무 부러워 부럽다 못해 소구르마에 짐까지 실은채로 버리고 부산으로 도망을
쳤었다.
그 때에 소구르마도 뉘집 것인지 알 수 있을 때라 소와 구르마는 집에서 찾아 갔지만,
처음 1년여는 집에도 못 왔지만 그 후로 집으로는 올 수 있었지만, 집의 양식은 갖다 먹을 수 없었다.
모친이 부산 나들이를 하시는 날이면 부산까지 가지고 가실 힘껏 자루에 넣어 담너머로 던져
두고 갖다 주었으니 고생은 말 할 수 없이 했다.
그 날이면 부친께서는 아예 사랑문을 닫은채로 내다 보시지도 않으셨고.
그 때 그 분은 공부를 해서 출세를 한다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고, 오로지 공부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탈출을 했었던 것이다.
공부는 스스로가 하고 싶어해야하고, 원리를 아는 그런 공부가 되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초등학교 때도 주관식 시험도 보았고, 고등학교 때에도 교과서에 괄호를 넣어
한자도 들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그런 공부를 학교에서 배웠다.
어제는 준서에미가 준서을 데리고 마트에 놀러 갔다, 장난감 컴퓨터와 준서가 사달라는 스티커책을
사왔다 한다.
넷까지는 한 눈에 알아보는데, 다섯부터는 세어야 한다 했다.
거스름돈이 다섯 이상이면, 나는 둘로 나눈다.
그러면 양쪽은 한 눈에 들어온다.
준서가 초등학생이 되어 방학 때 오면, 상세히 알려 하기보담은 한 눈에 파악하는 것을 알게 할것이다.
요즘은 할것 안할것 세세이 가르쳐서 그렇지 초등학생일 때 뭐를 그리 세세이 가르쳐야 한단말인가?
전체의 흐름을 알고, 느낌으로 알고,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내 자식들을 키울 때 복잡한 시장을 데리고 가면, 혹여 엄마가 안보이면, 그 자리에 있어라,
공원에 갔을 때는 엄마가 안보이면 (들어가면서) 이 문에서 기다려라 약속하고 들어 갔다.
그 판단이 안되는 작년 준서처럼 어렸을 때는 꼭 끼고 다녔었고.
준서를 올 1월 보낼 때까지, 늘 준서를 따라 다녔다.
안방으로, 거실로 졸졸 따라 다녔다.
너무 학원이 많다.
준서외할아버지는 운동하나, 악기하나(되도록이면 처음에는 피아노를) , 영어공부만 하면 된다한다.
너무 너무 앞서 가르치고 있으니 아이들이 공부에 내 몰리는 이즈음이다.
�기는 심정일텐데, 공부가 하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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