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내가 초등고학년 시절
외할아버님께서 돌아 가셨다는
한지에 붓글씨로 쓴 소식지 부고를 들고.
그 때로서는 외갓집에서
지나가는 시외버스 타고,
읍내로 나와서 시외버스 타고
부고를 사람이 가져 왔고,
누군가가 삽작 앞에서 불렀고.
나가서 부고 쪽지를 받아서
칙간과 디딜방아가 있는 지붕
서까래에 그 쪽지 끼워 두는것을 보았다.
소식 전하러 오신분은 바로 돌아서
가셨다.
그 때는 전화는 없었고,
사람이 가기에는 너무 멀면
우체국에 직접가서 전보로 보내기도 했다.
사람이 갈 수 있으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연락하는 사람을
직접 보내였고,
초등고학년 때 내가 살았던 집성촌은 동해남부선 기차역이
오리쯤 가면 있을뿐인
깡촌이었다.
요즘이사 소식도 손안의 전화
핸드폰으로 순식간에 통화로 전할 수가 있다.
그런 이 세상에서도 가까운이들의
초상 소식도,
치매가 들어 요양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도,
어찌 해 볼 수 없는 눈 뜨고
당하는 것들이고 다반사가 된 세상이다.
누가 이혼을 하겠다 하면.
나는 말린다.
하고 나서도 시원하기 보다
얼마나 힘들면 이혼을 했을까
싶어 어느 날 만나자 해서
어떻게 지내느냐고도 묻지 말고
밥 사주고 차 사주고 하는 친구가 되기는커녕.
저그들하고 상관이 없는데.
친구들이 떠나 가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쓸쓸
했을까가 느껴져 맘이 아팠다.
몇일 전에는 이혼을
왜 하지 말라 했었던가 하고
전화 통화 중에 물었다
부모가 너무 늙어도 경원시 하는 성인 된 자식들이 있는데,
이혼을 하게 되면.
엄마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지 않느냐고, 우선 자식부터,
외면 할 것이라고.
문제 끝이 아니고 문제 시작이라고
말렸다.
우리 시어머님 께서는 복도 화도
다 자기것이지 남의 것 가져 와서
내가 당하는 것은 아니라 하신다.
더 외로워 진다고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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