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년 전에 스무살에 몇년을 더한 때에 친구들과 울산의 배밭으로 구경을 가자 했지요.
울산은 그 때까지도 예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한 배 산지 였지요.
뱌 산지 여천이란 동네에는 외사촌 오빠가 마중을 나왔고, 우리들은 배밭으로 가서 직접 배를 따서
베어 물면 과즙이 흐르는 그 맛난 늦가을의 배를 먹었지요.
고래가 잡히는 장생포항으로 가서 회도 먹고 그렇게 아름답고 멋진 20대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시대가 나라 경제가 일본의 배상금을 받아 1,2차 경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일 자리는 늘어 났고, 그래서 울산 가는 시외버스에는 바다 낚시를 가는 남자분들도 탔었지요.
코스모스가 피어서 일렁이고, 그 때 나는 두갈래 머리를 땋았고, 친구들의 차림새는 기억에 없지만
아침 부산의 집에서 나서서 시외버스를 타러 가는 때도 뺨에 스치는 찬 공기는 정말 기분이 좋았지요.
그 친구들 중에 전화 하고 지내는 친구는 딱 한 명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모르겠다 싶어서 5년전인가? 몇 친구에게 전화 길을 트여 놓았지만,
안부 전화를 하면서도 대화는 겉돌더라구요.
낯 모르고 블로그에서 친구 되어 지내시던 분들도 몇몇 분 만났지만, 어제도 만났고, 늘 만났던
친구처럼 하나 어색한 것이 없었습니다.
올리신 글로서, 댓글,답글 달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상황을 알 수 있어,
어제도 만난것 같은 것은 글로서이지만 늘 만나고 있어서이지 싶습니다.
유리호프스
봄에 작은 폿트식물로 파는데,
2,500원~ 3,000원 이면 살 수 있는데,
길거리 꽃장수는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그 때 거의 꽃이 없으니,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화훼단지에서 사다 주었다.
9월 3일 현재 꽃이 이렇게 피고 있고,
10월말경 따뜻한 실내로 들이면,
그동안에 꽃몽오리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
자라고 꽃이 피고 2달여 겨울 실내에서 꽃을 피웁니다.
남편이 유일하게 자기 꽃이라 합니다.
그래서 화분도 이쁜것으로 사다 올 해 두 포기를 샀고,
작년에 심었전 것도 강전지를 했었는데
거의 이정도로 자라 있습니다.
삼각형 친구
새로 만든 새동네였습니다.
우리는 새 집을 사서 이사를 왔기에 8월에 이사를 왔을 때 동네는 공터가 2개 있고,
집이 다 신축되어 입주까지 한 동네였습니다.
이곳이 고향이던 사람들은 몇몇이 전부터 얼굴을 알고 지냈지만, 그렇다고 얼굴 안다고 친해지지는 않는 것이고,
다섯사람이 자주 모여서 놀았고, 10여년이 되는 동안에 이사를 갔고, 이웃친구와 우리만 남았습니다.
이사 간 친구는 저가 이 도시로 결혼을 해 와 저보다 나이가 많은 유일한 친구입니다.
두살 위이지요.
이웃 친구는 저보다 여섯살 아래이고,
형님이라 부르는 친구와 우리 셋은 코로나가 없을 때는 일년에 세번을 만나서 가는 곳도
늘 가는 오리고기 구워 먹는 집입니다.
올 6월 저가 코로나가 좀 진정 되어서 둘째네 집으로 가서 제법 오래 있다 오고,
셋이서 만났습니다.
맘으로는 아주 반가워도 호들갑을 떨 나이도 지났지만 본시 이웃친구와 나는 듣는 쪽이고,
그 형님은 여러가지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면서도 뭐 일상사에서 의논을 할 것이 있으면 또 우리들에게 전화가 옵니다.
삼각형의 변이 서로가 길고 짧고 하면서도 균형을 맞춘 것처럼 수다수다를 해도 서로가 이쁜 사람입니다.
어제는 그 친구가 우리가 어제 갔던 마트와 한 정류장 거리에 있어서 우리가 장을 마침 다 본 시각에
전화가 왔고, 만나서 마트안에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그 안에 커피숍이 있어서 커피를 마시고
코로나가 있어 마침 식당은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6년도 더 전이지 싶은데 우리는 봄이면 소풍 삼아 점심을 각자가 준비하고
쑥을 뜯으러 갔습니다. 3년간 행사처럼 했습니다.
일단 커피 한잔을 하고 쑥을 뜯다가 점심 시간이 되면 각자가 준비한 점심과 간식과
먹고 그곳은 벤취가 군데 군데 있고 화장실 건물도 깨끗한 곳이라,
그야말로 수다 수다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곳이였지요.
간식은 의논하지 않아도 중복되는 것이 없이 따로 따로이라 푸짐 했습니다.
쑥이 떡을 할 정도로 마치맞게 자라면 많아서 많이 뜯어서 갈 때 철제 핸드카트에 장화도 싣고,
점심거리도 싣고, 그렇게 승용차로 우리를 내려주고 친구 남편은 가시고,
쑥을 뜯어서는 좀 멀리 걸어 나와서 그 친구는 집이 가까워서 우리와 헤어지고는
바로 자기 집으로 가고, 우리 둘은 버스를 타고 돌아 왔습니다.
그 때는 힘이 남아 돌았던지,
핸드카트에 쑥 뜯은 것을 싣고도 버스도 날렵하게 탔으니까요.
그 쑥을 그 날로 바로 고르고 데치고, 그 담날은 방앗간으로 들고 가서 떡도 두가지 하고,
쌀과 갈아서 집에 와서 치대어 개떡을 만들어 냉동 해두었다가 쪄서 먹고,
참말로 재미가 났었는데 이제 우리들 체력이 낮아져서 그 재미난 일도 못하고 있다가
코로나가 왔지요.
저가 하는 모임이 3곳인데 다들 농촌의 자연부락처럼 나이가 차이가 납니다.
나이가 차이가 나면 서로 서로 양보가 되어서 더 재미나다 싶습니다.
양념간장
입맛이 없어서 무엇을 해 먹을까? 밥 때가 되면 걱정이 됩니다.
일주일 전에는 꽃게 찌개를 했었고,
3일전에는 동태포를 뜨면서 나온 것과 동태 한마리 잘라서 동태찌개를 오랫만에 해서
두 끼니를 맛나게 먹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저런 먹던 반찬을 내어 놓을 것은 있는데, tv화면 자연인 프로그램에서
무청시래기로 음식을 하는 중에 보았는데, 씨래기 된장국도 보이고,
밥이 다 되어서 솥뚜겅을 여는데 무청시래기 밥이였습니다.
지난 월요일 요즘은 열무씨앗 뿌려서는 나물이 빡세어서 무씨를 뿌려서 키운 것이라고
부들부들하게 한참 자란 나물을 팔고 있었습니다.
코로나를 하느라고 장을 보러 가지도 못했고, 입 맛도 없고, 나물이 고팠지요.
덥석 10,000어치 열무김치도 담고 하면서 샀는데 제 체력이 그것까지 할 수 없어서
뒷집 형님 좀 드리고, 열무김치는 속 고갱이만 조금 골라서 하고 나머지는 데쳐서 김치냉장고에
넣어 둔 것이 있었지요.
나물을 쭁쭁 썰어서 들기름으로 무치고, 가스불 직화로 솥 밥을 했습니다.
양념간장을 하는데 올 해 담은 장에서 뜬 간장을 처음으로 한 병 가지고 왔지요.
그 햇간장에 마늘 다진 것, 옥상표 풋고추 다지고, 파 잘고 얇게 썰고,
작년에 선물 받은 태양초 고추가루 넣고, 깨소금 통깨로 오늘 아침에 갈고,
참기름 넣고, 양념간장을 건지가 많게 했습니다.
무청시래기 밥은 부드러웠고, 양념장을 올려 비비니 금방 한 것이라 양념향이 쏠쏠 나는게
정말로 맛이 있었습니다.
광고에 빨래가 펄럭이고 빨래 끝이라 하더니,
저도 오늘 아침 이할머니의 20대로 갔다가 어제로 거쳐서 컴퓨터 책상에서 현재를 끝냅니다.
오늘은 참깨를 볶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