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으로 돌아 왔다.
겉옷도 시시때때로 세탁기를 돌리고, 속옷을 타올수건과 함게 세탁기에 삶았고,
그러게 살고 왔는데도 여행가방 속에서의 빨래감들은 자꾸 나온다.
세 끼니 밥을 다 하고 산 것도 아니고,
그저 아기 밥 챙기는 정도였고, 주말이 아니면 낮시간은 혼자서 종일 쇼파에 누었다.
자세 바꾸어 누웠다. 그도 편편찮으면 마루 바닥의 딱딱함과 시원함에 누워서 보내기도,
그랬는데 집에 오니 옥상정원도 올라 가지 않았고, 내일 아침에 올라가지 하고,
말끔하게 치워 놓고 간 집이지만,
내가 여행 가방을 정리 하는 동안 에어컨을 켠다고, 쇼파를 당겨 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6마리 구피를 친구네에 맡겨 두고 갔던 것은
꽤 여러마리가 되고, 뿌리가 있는 구피 쉼터까지 두 줄기를 선물 받고 돌아 왔다.
이웃 친구는 우리집 생명 있는 것들을 돌 봐 주었다.
그러면서 작년 호박 거실에 두었던 것이 아직 썩지 않은 것 올망 졸망 한 것들을
호박 죽을 끓였다면서 큰 냄비에 가져다 주었다.
호박죽을 끓여 남을 준다는 것도 이 계절에는 맛도 제철보다 떨어질 것이고,
이 더운 날씨에 참으로 그 고마움이 호박죽은 별미가 되었다.
해가 지니 옥상의 뜨거운 기운도 잦아 들고 나서,
남편이 옥상에 가 보자 해서 올라 갔더니,
전체적으로 키가 컸고, 풀은 삐죽삐죽, 또는 그 화분의 쥔장보다 더 기세 좋게 자라 있었다.
내가 20일만에 돌아 왔고,
이웃 친구가 이 여름에 그 많은 화분에 물을 주고 키워 주었고,
왔다고 전화 통화에 이제 여름에는 어디 가지 말라고,
죽는 포기들이 나와서 얼마나 신경이 쓰였는지?
물을 많이 주어서 그러나?
그렇다고 물을 넉넉하게 주지 않을 수도 없었고 신경 쓰였다고 했다.
한 계절 꽃이 피고 초화들은 내가 있어도 죽을 것은 죽었을 것인데 뭐 그렇게 신경을 썼나?
옥상에 올라 가니 잘만 키워 놓았던데
내가 5월에 청화쥐손이를 사다 좋아라 했던 것이 시들시들하더니 죽었다고.
수도권의 딸네 집으로 자식들은 재택근무가 끝나서 아이들 돌본다고,
주중에는 가고, 주말이면 금요일 밤 막차를 타고서라도 집에 돌아 오는 친구가
화요일 간다 해서 전화를 했더니 월요일 왔고, 딸이 마중을 나와서 타고 딸네 집으로 가고 있다고.
꽃은 비실비실 하다가 죽어 가고, 훈이 할머니 맘 짐작한다고,
집으로 오면 화훼단지에 가서 청화쥐손이 있으면 사다가 키워서 가을에 내게 주겠다고.
지금은 없을 것이다 했더니 어찌 되었던 걷기 운동을 화훼단지 쪽으로 해서 가 본다고.
이제 내가 돌아 왔으니 자네 집 정원은 내가 맘으로 지킬게 해서 웃었다.
아이들 집에서도 새벽 04시대에 잠이 깨었고,
우리 집에 돌아와서도 같은 시간데에 잠이 깨고,
아이들은 오전 일을 마치고,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우리들을
기차역까지 프랫트홈까지 배웅 해 주었다.
족두리꽃
심을 흙이 모자라서 작은 화분에 한 포기,
또 작은 화분에 2포기 심고,
모종을 친구가 와서 가져 갔는데,
여러 곳에 나누었다고, 다들 이쁘다고 한다고,
딸네 집에 가서 20일을 있었는데도 지루한 줄 몰랐고,
하나 불편 한 줄도 몰랐다.
유치원 아이는 오는 날 아침에 할아버지 가면 내가 심심한데라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 왔을 저녁 때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이가 인사한다고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르며 안녕이라 했다.
지금도 보고 싶다라 했더니 기다리고 기다리면 또 만나게 될거야라 했다.
아마도 에미가 그리 말 했지 싶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다라 하니 기다리고 기다리면 오실 것이다 했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