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지금은 강정이라 부르는 것을,
내가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는 '어리' 라 불렀다.
곡식이 그대로 볶으면 연하지 않고 딱딱하니,
물을 부어 겨울 밤을 지나면 불어나고 얼어서 일건져 놓다.
가마 솥에 볶았지요. 그러면 그냥 마른 곡식을 볶은 것보다 부드러워서.
곡식을 따로 담그기에 크고 작은 다라이들이 나란히 나란히 그 추운 겨울밤을 새었다.
볶는 아궁이에 불은 솔갈비로 조심스럽게 넣어야 했고, 어머니는 부두막에 올라 앉아서 볶으셨다.
불을 때면서 볶은 콩이고, 쌀, 찐쌀을 한 줌 주시면 얼마나 고소하던지.
그 날로 강정을 만드셨다.
몇가지가 되었고, 맛보기로 식구들 조금 먹고 나면 설명절에야 다시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돈만 들고 나가면 갖가지 과자들이 많아도 그 과자들보다 더 맛나고
고급인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내가 신혼인 때는 강정 만드는 곳은 임시로 길에 만든 곳도 있고,
재래시장 가게에서 하는 곳도 있었고, 펑튀기 기계가 마른 곡식을 틔우거나,
아니면 왕모래 같은 것에 곡식을 넣고 볶으면 곡식은 탁탁 튀면서 볶아지고,
그렇게 강정을 만드는 곳은 유명세를 탔고, 일부러 버스타고 갔는데,
강정 만들어 주는 곳은 어디고 줄을 길게 서서 그 추운데 만들어 왔다.
그 때야 가족이 많기도 했지만, 지금은 설 대목을 앞 두고 강정을 미리 만들기도 하고
그냥 두어가지 사 오면 한참을 먹는다.
달고 딱딱해서
어린 시절 살았던 아버지의 고향에서는,
도시로 나가 살았던 친척들이 다 설이라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내려서
한참을 걸어 오는데도 다들 오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새 옷도 사 오시고, 우리들 설빔도 사 오시고, 과자들도 사 오시는데
친척들이 사는 동네라 어르신들 계시니 댁으로 큰아버지가, 삼촌이 가져 오셨어요라 했고,
1년 내 가야 돈 주고 과자를 사 먹던 시절이 아니여서 각 집에서 돌리는 과자와 왕사탕은
너무도 귀한 것이였다.
그렇다고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고 그런 것은 아니였고, 할머니가 가끔 주시기도 했고,
일단 설 전날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다.
설이 지나고 음력 정원 대보름날이 지나면 시집간 고모들이 나이가 차이가 져도 여러 집에서
왔고, 고모부들은 처객이라 했고, 어느 집에 모여서 닭 잡고, 점심을 먹었다 하면,
저녁은 또 다른 집에서 먹고,
달밤에는 처객들이 한편, 그분들께는 처남들이 한편이 되어서 서로 물을 퍼 붓고
그 겨울에 동네가 한바탕 난리가 나고, 다시 어느 집으로 모여서 먹고 마시고 하셨다.
온 동네가 정말로 한바탕 잔치이고, 고모부들은 모여서 있으면 동네에서는 먹을거리를
가져가고 온 동네가 모여서 놀았다.
그러고 보면 그 음력 보름은 농사가 시작 된 것도 아니고, 귀한 백년손들이 왔으니
처객과 처남들이 모여서 그렇게 신나게 노셨던 것 같다.
설이 지나고 대보름이 지나고 얼마 있으면 음력 이월 영동할미 날이 된다.
그 때도 찰밥을 했고, 짚으로 배처럼 만들어서 찰밥과 나물등을 담아서
장독간에 얹어 놓고 올 해 농사 잘 되게 해달고 할머니들께서는 비손을 하셨다.
그 밥은 까치들과 새들이 먹었지 싶다.
그 시절은 농사를 겨울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영동할미밥까지가 공짜 밥이고, 영동이 지나고 나면,
퇴미 더미에서 지게에 바소쿠리 얹어서 퇴비를 논에 내었다.
머슴도, 머슴이 없는 집도 다들 농사철이 시작 되는 것이였다.
우리들은 입춘이 되면 밭둑으로 돌아 다니면서 봄나물을 캐오라 하셨고,
바람이 찬데도 아이들이다 보니 까르르 웃으면서 봄나물을 캐 오기도 했다.
양력 4월이 되어도 들판은 바람도 일고 손이 시렸다.
그래도 우리들은 소 죽을 끓이는데 넣는다고 호미를 들고, 풀을 캐러 다녔다.
풀을 캐어서 봇도랑에 소쿠리채로 넣어서 일렁일렁 씻어서 가져 왔고,
지금 생각하면 그 봄풀이 없어도 쇠죽을 끓이면서도 소에게 쇠죽을 더 맛나게 한다고
소는 재산이고 우리는 시키면 일을 하는 여자아이들인 것 뿐이였던 것이다.
그 여자 아이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
어제는 굴을 넉넉하게 넣고 매생이 죽을 끓였더니 전복죽 못지 않게 맛이 있었다.
오늘 아침 밥에는 햅쌀, 찹쌀, 귀리, 돼지감자 말려 놓았던 것, 구지뽕가루를 조금넣고
밥을 할 것이다.
밥이사 때로는 무밥도 하고, 큰마트에서 곤드래나물 건채가 있어 사 온 것도 있고,
콩나물밥, 보리밥,콩류를 몇가지 넣는 등
입맛대로 받을 한다.
노년의 부부 둘만 사는 것은 뭣을 하던간에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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